철교와 한반도 [유레카]

광고
한반도와 만주를 가르는 큰 하천인 압록강에 현대적 철교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909년 8월이었다. 개통식은 2년3개월 뒤인 1911년 11월1일 열렸다. 그 직전인 1911년 10월20일치 ‘매일신보’ 2면에서 “압록강 철교 개통식은 신의주에서 거행”되며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총독이 출석한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다. 길이가 1㎞ 조금 못 되는(944.2m) 이 다리를 짓는 데 든 총예산은 당시 돈 기준으로 175만원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철교는 서울~신의주를 잇는 ‘경의선’과 안둥(지금의 단둥)~펑톈을 잇는 ‘안펑선’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1940년 펴년 책 ‘조선철도 40년 약사’에 따르면, 철교 가운데 기차를 위해 철로(단선)를 깔고, 그 양쪽에 각각 2.6m 정도 너비의 인도를 설치했다. 12개 교형(橋桁·교각과 교각 사이의 상판)은 활 모양의 아치형이었고, 중간에 다리 상판을 45도 정도 틀어 배가 오갈 수 있게 했다.
새 다리는 곧 ‘민족 차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일본인은 다리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지만, 조선인은 반드시 ‘여행증명서’를 소지해야 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지만 1921년 6월21일치 3면 기사에선 “조선인의 출입을 취체(取締·단속)하는 것은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리석기도 하다”며 “소위 당국이 설명한 일선(日鮮·일본인과 조선인)인 차별 철폐와 모순”된다고 꼬집었다.
광고
1931년 만주사변이 터지자 일본~한반도~만주 사이 물류 수요가 폭증한다. 이를 떠받치기 위해 제1철교의 상류 70m 지점에 제2철교가 만들어졌다. 폭격에 잘 견디는 내탄구조(耐彈構造)를 갖춘 이 다리는 1936년 12월 건설을 시작해 1943년 5월15일 개통됐다. 한국전쟁 때 ‘항미원조’를 결심한 중국이 북한으로 군인과 물자를 쏟아붓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고, 그래서 1990년 ‘조중우의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쟁 때 파괴된 제1철교는 그 옆에 남아 관광 자원으로 쓰이는 중이다.
북·중이 낡은 다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새 교량 건설을 시작한 것은 2010년 12월이었다. 왕복 4차선인 ‘조중압록강다리’(신압록강대교)는 2014년 완공됐다. 무슨 일인지 12년간 방치돼오다 지난 10월15일 전격 개통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월24일 새 다리를 지나 단둥시를 깜짝 방문했다. 북-중 교류가 늘 것으로 보이는데, 한반도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