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바람이 머리를 빗는 자리 [현장 화보]
산 이름은 ‘민둥’이지만 가을의 민둥산은 결코 비어 있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둥글게 솟은 해발 1,119m 정상부 능선을 억새가 빈틈없이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억새가 한쪽으로 몸을 누였다가 일어서며 산 전체가 숨을 쉬는 듯합니다.
4일 찾은 강원 정선 민둥산은 휴일을 맞아 이른 아침부터 산행객들로 붐볐습니다. 증산초교 쪽 들머리부터 정상까지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산악회 회원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정상에 서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사방으로 겹겹이 이어진 정선의 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그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낮게 내려앉습니다. 억새의 은빛과 하늘의 파랑, 단 두 가지 색만으로 풍경이 완성됩니다.
정상 아래에는 석회암 지대가 꺼져 생긴 움푹한 웅덩이 ‘돌리네’가 자리합니다. 억새 사이로 드러난 둥근 지형은 민둥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정선아리랑의 첫머리입니다. 이날 민둥산 위로는 검은 구름 대신 깊고 맑은 가을 하늘만 펼쳐졌습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듯 숨 가쁘게 오른 이들에게 산은 바람 한 줄기와 은빛 물결로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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