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건 밤 비행에서 벌이는 잠과의 사투”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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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정유나(가명)씨에게 연락했을 때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새벽에 커다란 폭발음을 듣고 자다가 깨어났다는 거였다. 엊그제는 비행을 위해 회사에 출근하다가 재난 문자가 폭탄처럼 쏟아졌다고. 처음 듣는 소리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직원들도 다들 얼어버린 것 같다고. 무서운 이야기들에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나를 달래며 유나씨의 목소리는 되레 밝아졌다. 그는 나를 안심시켰지만, 올봄에 있었던 인터뷰 이후 원고를 정리할 때마다 중동 상황을 살펴보며 나는 걱정했고, 가끔 유나씨에게 연락해 안부를 물었다. 유나씨가 일하는 곳은 올해 초 시작된 전쟁으로 여전히 시끄러운 중동, 아부다비다. 전쟁이 한창인 지금도 대한민국 사람 유나씨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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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씨는 5년차 항공사 승무원이다. 사회 경력을 쌓기 시작할 때부터 승무원을 꿈꾼 건 아니었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유럽을 여행할 때 우연히 승무원 채용 정보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가 입사한 시점은 코로나가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시기가 시기라 여행 수요가 폭발했고, 항공사도 승무원 채용을 대폭 늘렸다. 유나씨는 대학 때 무역을 전공했다. 막연하게 외국에서 살고 싶었고,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도 가득했다. 취업을 준비할 때도 해외 체류가 가능한 회사들을 위주로 알아봤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게 판타지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어요. 바로 복학하기 아쉬운 마음에 캐나다에서 벌었던 돈으로 6개월간 남미 여행을 했고요.”
아르헨티나에서 살사를 추고, 구름 낀 마추픽추를 오르는 자신을 보며, 유나씨는 자신이 여행을 좋아하고 꽤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여행에서 만난 친구가 현재 다니는 회사 지원도 권유해줬으니, 돌아보면 그 여행은 유나씨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회사에 들어와보니 동료들의 국적도 한두곳이 아닌데다, 살아온 배경도 가지각색이다. 간호사, 변호사, 엔지니어처럼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항공사에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외동딸이 중동에 승무원을 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탐탁지 않아 하셨다. 지금은 어떠시냐고 물었더니, 직계 가족 비행기 티켓이 큰 폭으로 할인되는 항공사의 혜택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시며 좋아하신단다. 일년에 주어진 휴가는 30일이고, 비행 스케줄이 불규칙해 일하지 않는 날이 4일 혹은 5일 이상 나올 때도 있다. 휴가 때 집에 가면,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일했을 때보다 집에 더 자주 오는 것 같다며 부모님이 신기해하신다.

일하는 날의 하루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비행기에 탑승할 기장들과 승무원들이 회사에 모여 비행 정보를 교환하는 브리핑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다. 승객 인원을 확인하고, 아기나 몸이 불편한 승객 등의 특이 사항을 공유하고, 당일 날씨와 비행시간 등 중요 정보를 나눈다.
공항으로 옮겨가 비행기에 탑승하면, 가장 먼저 안전 도구들을 점검한다. 승무원 자리에는 각각 소화기, 손전등, 구명조끼, 장갑, 산소통 등의 안전 도구가 갖춰져 있는데, 비행마다 해당 물품들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 밖의 기내 준비, 기내식 수량 체크 등을 마치고 보딩이 시작되면 승객들을 맞이한다. 이륙 후, 식사 서비스를 마치고 나서는 잠깐 쉬는 시간이 생긴다. 갤리에 앉아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장거리 비행의 경우엔 잠을 잘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예전에 비하면 기내식이 아주 맛있어졌다고 하자, 유나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맛있는 기내식도 수년간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유나씨는 질문을 듣고 웃었다.
“사실 전 요즘 기내식을 잘 먹지 않아요. 맛이 없지 않지만, 공중에서 먹은 도시락은 속을 더부룩하게 할 때가 있거든요. 업무에 방해를 받느니, 긴 비행에서는 도시락을 싸 가는 경우가 많아요.”
기내에서 도시락을 먹는 승무원을 상상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기내식도 승무원에게는 회사에서 주는 식당 밥 같은 거니까.
루틴처럼 진행되는 일들은 사실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건 밤 비행에서 벌이는 잠과의 사투다. 중동 항공사들은 대륙 간 허브 공항을 지향하기에 저녁 시간대에서 새벽 사이가 가장 바쁘다. 밤에 출발해 아시아로 도착하면 낮, 유럽에 도착하면 이른 아침이기 때문에 비행시간으로 가장 좋다.
“비행 스케줄이 밤에 있는 날엔 낮부터 최대한 잠을 자두려고 노력합니다. 2~3시간이라도 자고 나면 밤샘 비행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져요.”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다시 돌아오는 비행을 할 때까지 짧게는 24시간, 길게는 3일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다. 보통 제일 먼저 하는 건 가고 싶던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거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테이트 모던이 그랬다. 가보지 않았을 때는 정말 가보고 싶었고, 지금까지도 자주 찾는다. 오리지널 버전의 공연이나 전시를 찾아가는 것도 생각보다 쉽다. 뉴욕의 뮤지컬들은 거의 다 보았다고 한다. 보고 싶은 공연 일정에 맞춰 비행을 신청하기도 한다. 장미셸 바스키아 전시를 보려고 빈 비행을 선택한다든지, 잭슨 폴록 특별전을 보려고 뉴욕 비행을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국가 간 이동이 잦으니, 해당 나라의 전통 음식점이나 유명한 식당을 방문하기도 편하다. 자주 가는 도시에는 단골 식당이나 카페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쇼핑할 때 국가 간 가격 비교를 하기도 한다. 같은 물품이라도 어떤 도시에서는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즐거움을 느낄 때, 유나씨는 이 직업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항공 승무원이 화려해 보이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면 때문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연차가 쌓일수록 일정을 여행처럼 보내는 재미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부족한 잠과 피로한 몸 때문이다.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제공되는 음식을 겨우 먹고 잠만 자다 오는 날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래도 인기 많은 취항지, 정말 가보고 싶던 곳에 가는 비행엔 일하는 것 같지 않고 도착해서도 힘이 솟는다. 퇴근 후 눈부신 바다가 펼쳐지는 휴양지에서 멋진 순간을 맞이하는 직업은 세상에 많지 않을 테니까.

유나씨는 스스로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래서인 것 같은데, 승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리며 ‘생큐’(Thank you) 한마디 건넬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승객의 인종과 연령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비행하며 느끼는 각자의 감정도 다를 텐데, ‘수고했다’, ‘고맙다’ 말하며 웃어주면, 비행이 아무리 고되었더라도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마음이 쓰이는 건 아무래도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다. 순 비행시간만으로도 9시간은 족히 떨어진 거리에서 홀로 살고 있는 탓에, 각종 경조사나 명절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지 못한다. 가까운 친구들의 좋은 일, 나쁜 일에 참석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집안의 대소사도 그냥 넘겨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까운 친구들이 힘들 때 전화 한통 제대로 건네기조차 힘들다.
“가끔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까지 와 혼자 떨어져 있나 싶은 마음에 괜히 우울해지기도 해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직업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느낀다.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곳곳을 오가며 비행을, 특히 밤에 많이 하다 보면, 말 그대로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다. 도착지마다 완전히 다른 시차 탓에 잠을 규칙적으로 잘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 나날이 면역력이 떨어지는 걸 체감한다. 어떻게 해결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을 사는 일이 잦아졌다며 웃는다.
외항사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다. 유나씨의 회사에서는 팀으로 비행 일정을 짜주지 않고, 비행마다 다른 승무원들이 한 팀이 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당일 처음 만나 함께 일하게 된다. 이건 굉장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가령 유난히 게으르고 손발이 맞지 않는 친구들을 만나면 무척 바쁘고 일하기 힘들어진다. 한국인들은 민첩한 편이라 더욱 그걸 잘 느낀다는 거다.
“한국인은 빨리빨리 민족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제가 두세배씩 일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는데, 초반엔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걸 알고 몇몇 친구들은 일부러 못하는 척 일을 떠넘기기도 했어요.”
반대로 신경 써야 할 팀원이 없다는 건 장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과 비교했을 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강도가 확실히 낮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면 더 이상 그 비행에 관해 생각할 필요 없고 오롯이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보기 싫은 동료도 이 비행만 끝나면 다시 안 봐도 된다. 이런 건 타국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웠던 부분들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유나씨는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을 여러장 보내왔다. 비행 전후, 여행지에서 틈틈이 찍은 사진들이라고 했다. 자신의 직업을 상징할 만한 물건을 찍어 사진 한장 더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며칠 뒤에는 여권과 각종 비자와 입국 서류가 들어 있는 파우치를 찍어 보내왔다. 사진 속 서류들의 끝부분이 해져 있었다. 수많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온 흔적이었다. 나는 그 서류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마음이 애틋해졌다. 그것을 들고 어느 날은 뛰고 어느 날은 걸었을, 어느 날은 당차고 어느 날은 종종 걸었을, 전세계 공항에 울려 퍼지는 유나씨의 구두 소리를 상상했다.
유나씨는 인터뷰 내내 웃었다. 덕분인지 나도 내내 기분이 좋았다.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란, 어쩌면 교육받은 미소 뒤에 이미 긍정적인 마음을 장착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전쟁의 한 파고에 있는 중동에서 일하는 유나씨가 “상황이 어렵지만, 그래도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비행에서 최선을 다해 웃으며 서비스할 생각”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무척이나 대단해, 아니 단단해 보였다. 유나씨가 가진 긍정의 힘으로, 더 많은 세계의 시민들이 평화로운 지구촌을 다시 맞이하길 바라면서, 유나씨가 늘 웃으며 지구 곳곳을 날아다니길 기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최유안 소설가

최유안 l 월급사실주의 동인.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보통 맛’, 장편소설 ‘백 오피스’, ‘새벽의 그림자’ 등을 썼으며,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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