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열, 거침없이 ‘페미니즘’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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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슨 기자를 해?”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자 유숙열의 친척들은 비웃었다. 몇년 뒤 그는 진짜 기자가 됐고, 그 몇년 뒤 ‘해직 기자’가 됐다. 1980년 봄, 김태홍 당시 한국기자협회장을 숨겨주었다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고 이근안의 물고문을 받아 쓰러졌다.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한달 만에 기소유예로 풀려나는 그에게 검사는 비아냥거렸다. “언론자유 신경 쓰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 직장에선 강제 해직됐다.
뉴욕에 가서 페미니즘 제2물결 한가운데서 기라성 같은 이론가와 운동가를 접했다. ‘성의 정치학’ 저자 케이트 밀레트, 레드스타킹, 나우(NOW, 전미여성기구), 게릴라 걸스 등을 취재했다. 운명처럼 만난 오드리 로드는 위축되어 있던 학생 유숙열에게 “삶은 테러와 직면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침묵은 너를 보호하지 못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탄생의 주역,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 기자 유숙열이 ‘웃고 놀고 뒤집은 나의 페미니즘’을 펴냈다. 2025년 ‘한겨레’에 연재한 생애사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36호를 발간한 ‘이프’에 실었던 글을 함께 실었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모노드라마로 바꾸어 한국에 소개하고, 이브 앤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번역했다. 문화일보에서 여성 전문기자, 생활건강부장 등을 거치며 13년 동안 일했으나 반골인데다 페미니스트여서 곱게 지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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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못 쓰는 글은 ‘이프’에 썼다. 책의 2부에서는 가수 박진영(1998년), 시인 박노해의 도발적인 인터뷰(1999년)와 386 남성 정치인들의 ‘5·18 전야제 술자리’ 비판(2000년) 등 잊힌 사건과 묻힌 역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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