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설명의 부재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사안의 성격은 ‘제청권과 임명권의 충돌’, 나아가 ‘사법독립과 민주적 정당성의 충돌’로 도식화되고 있다. 이 도식은 과연 옳은가. 그런 치환으로 충분한가.
헌정 역사상 대법관 임명에 있어 대법원장의 제청 의사와 대통령의 임명 의사가 공식적으로 어긋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이승만 대통령의 대법원장 후보자 제청 거부 제외).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대법관 임명은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독립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인사였던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떤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렀는지 설명된 바 없기 때문이다.
고문으로 날조한 증거에 기해 정권의 요구대로 유죄 판결을 양산하며 군부 독재에 부역한 사법부였다. 그런 사법부가 민주화와 함께 ‘사법독립’ 및 ‘법치실현(통치권력 통제)’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1987년 헌법은 대통령의 사법에 대한 권한을 대법원장에게 대폭 이전했다. 대법원장은 사법독립과 동의어가 됐고, 이는 곧 사법부 조직의 독립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이번엔 대법원장이 개별 재판에 관여해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한편 재판으로 국정에 협력하겠다며 갖은 방식으로 정권에 다가섰다. 사법농단이다.
사법독립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된 재판을 하여’ 통치권력을 사법적으로 통제하고(법치),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민주) 수단적 가치인데, 조직논리로 해석하면 사법부 스스로 군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 조직논리로서의 사법독립은 대법원장의 자의적 의지 관철을 보장하고 정당화한다. 한편,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은 사법부가 국정에 협력하도록 집요하게 압박해왔다.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권한이 판사들의 개별 재판 통제로 이어지길 요구했고 대법원의 재판 방향을 통치 기조에 정렬시키도록 다그쳤다. 이러한 대통령의 사법 장악 시도를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 볼 수 없다. 민주적 정당성이 대통령의 모든 자의적 의지에 대한 면죄부일 수는 없다.
이처럼 대통령을 민주적 정당성으로, 대법원장을 사법독립으로 자동 치환시킬 수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이번 대법관 임명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나는 이 사태를 구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공식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법원장의 제청 기준과 대통령의 임명 기준이 어떠한지, 제청 전 협의 절차와 결렬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향후 자기 재판을 염두에 두고 특정인 제청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법 장악 시도로서 비판받아 마땅하겠으나, 이조차 불분명하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헌법적 명분이 어디에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설명의 부재는 ‘어떤 이가 대법관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대법원장과 대통령 중 누구의 의지가 관철돼야 하는가’를 결단하는 문제로 바꿔놓는다.
누가 대법관이 되는지는 내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모든 재판은 독립돼 있고, 하급심이 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구체적 법해석의 확정은 대법원이 하기 때문이다. 법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갖춘 대법관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두고 막연히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으로, 대법원장은 사법독립으로 치환해 논할 수는 없다.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합의하면 잘된 인사이고, 어긋나면 갑자기 주권재민과 사법독립의 정면충돌이 되는 식의 해석, 이것은 지나친 왜곡이다.
대법관 증원의 의도에 대해 말이 많지만, 대법관 구성의 민주적 다양성과 전문성 확보도 주된 취지였다고 믿는다.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대법원을 필요로 하는지, 이 사람은 왜 제청되었고 왜 임명되었는지 묻고 따지는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각 헌법기관은 어떤 가치 기준과 근거 아래 권한을 행사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충실한 설명 의무는 헌법기관의 민주적 책무고, 시민은 이를 통해 대법관 구성에 소외 없이 참여하게 된다. 그와 달리 증원된 대법관 임명 절차가 각 헌법기관 간 권력다툼 내지 야합에 불과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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