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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19, 2026

“서울 떠나 제주에 살면서 그림이 밝고 가벼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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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에 한국화를 그리는 금일귀 작가가 첫 개인전시회를 하루 앞둔 16일 제주시 삼도2동 세이브 갤러리에서 작품 ‘나잠어진’(2026)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나잠어업하는 해녀를 왕의 초상화 형태로 그린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서보미 기자
비단에 한국화를 그리는 금일귀 작가가 첫 개인전시회를 하루 앞둔 16일 제주시 삼도2동 세이브 갤러리에서 작품 ‘나잠어진’(2026)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나잠어업하는 해녀를 왕의 초상화 형태로 그린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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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놓고 보니 제주 이주 전후의 그림이 꽤 달랐어요. 서울에서 그린 그림은 어둡거나 무표정한데 제주에서 그린 그림은 확연히 밝고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지난 16일 제주시 삼도2동 ‘세이브 갤러리’에서 만난 금일귀(35·사진) 작가의 말처럼 전시실에 걸린 한국화 작품의 분위기는 둘로 나뉘었다. 그 중간에 “영원히 미완성 상태로 남은” 작품 ‘전환점’(2023)이 있었다. “세월을 낚는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다 번아웃이 왔고 색을 칠할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그때 행복한 척하는 대신 진짜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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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귀 작가가 비단에 채색을 하다가 멈춘 ‘전환점’(2023). 이 그림을 버리기로 한 이유를 담은 글도 작품의 일부가 됐다. 금일귀 작가 제공
금일귀 작가가 비단에 채색을 하다가 멈춘 ‘전환점’(2023). 이 그림을 버리기로 한 이유를 담은 글도 작품의 일부가 됐다. 금일귀 작가 제공

15년의 서울살이를 접고 제주시 애월읍 바닷가로 이사한 2023년 12월부터 금 작가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대로 ‘날마다 귀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한 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느라 맘껏 그리지 못했던 그림”을 지금은 실컷 그리며 산다. 약 10년간 이어진 작품 활동의 연대기를 담은 첫 개인전시회 ‘날 일, 귀할 귀, 날마다 귀하다’도 17~31일 연다.

글·사진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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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도가 높은 제주”처럼 쨍한 색감과 재치가 돋보이는 ‘누림보 어진’(2024) 역시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나무늘보 삼형제인 누비·누바·누보의 캐릭터를 왕의 초상화 형태로 그린 누림보 어진 시리즈에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이 담겼다. “나무늘보인 (누비·누바·누보) 캐릭터들은 매우 느리지만 나름대로 각자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에서 ‘너무 누림보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림으로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죠.”

나무늘보 삼형제인 누비·누바·누보의 캐릭터를 왕의 초상화 형태로 그린 ‘누림보 어진’(2024) 시리즈 가운데 ‘누비: 오히려 좋더구나’. 금일귀 작가
나무늘보 삼형제인 누비·누바·누보의 캐릭터를 왕의 초상화 형태로 그린 ‘누림보 어진’(2024) 시리즈 가운데 ‘누비: 오히려 좋더구나’. 금일귀 작가

작품은 육지에서 구한 비단에 그린다. 대학교 4학년 무렵에 매료된 한국화의 기법을 두루 공부하다 흐르는 듯한 물성을 지닌 비단에 푹 빠졌다. 화학 처리를 하지 않은 생견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씨실·날실로 얽힌 직물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전통 접착제인 아교를 십여차례 덧발라야 그림을 그리는 화판이 된다. 공들여 단계를 밟아가야 하는 밑작업은 “수련의 과정”과도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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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한라산 성판악: 기린 다리’(2026). 금일귀 작가 제공
한라산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한라산 성판악: 기린 다리’(2026). 금일귀 작가 제공

제주는 작품 무대이기 이전에 일상의 터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 경북 영양을 떠나 서울의 빌딩 숲에서 십수년을 긴장한 채 버텼던 그는 이제야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고 느낀다. 밥상은 직접 가꾼 텃밭에서 따온 상추, 깻잎, 루꼴라, 쪽파, 고수로 차린다. 운이 좋을 때는 물질로 잡아온 소라, 문어, 전복도 오른다. 지난해 4개월 과정의 해녀학교를 졸업한 뒤 한 어촌계에서 ‘인턴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정식해녀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제주에 살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게 해녀 일이었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일이잖아요.”

인스타그램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머리에 귤을 올린 ‘일구링’은 금일귀 작가의 캐릭터다. 금일귀 작가 제공
인스타그램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머리에 귤을 올린 ‘일구링’은 금일귀 작가의 캐릭터다. 금일귀 작가 제공

‘제주바라기’라고 해서 무작정 제주로 내려온 건 아니다. 이주를 결심한 순간부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단점을 모으고 대비책을 마련했다. 섬에서 ‘육지것’으로 불리지 않으려면 “‘삼춘’(제주어로 이웃 어른)들에게 받아주실 때까지 웃고 인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인지 “각오하고 왔는데 아직 텃세를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섬에 스며들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제주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다. 지역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생각에 아동·청소년·성인을 대상으로 꾸준히 문화예술 수업을 하고 있다. 한때는 어르신들과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금일귀 작가 제공
금일귀 작가 제공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리고 있는 ‘이주민의 제주살이 일상툰’에도 제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겼다. 머리에 귤이나 해삼을 올린 캐릭터 ‘일구링’(일구는 작가의 별명)은 직접 꺾은 고사리로 고사리육개장을 만들고, 오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먼발치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바라보는 ‘본체 금일귀’의 귀한 나날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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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제가 살면서 발견하게 될 제주의 예쁘고 소중한 면모들, 삼춘들과 동고동락하며 바다에서 겪게 될 일들을 꾸준히 작품에 담아나가고 싶어요. 실험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많거든요. 제 그림을 보는 이들이 이전보다 조금은 더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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