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사가 낸 무명작가의 첫 소설…‘휴남동 서점’은 어떻게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됐나
지난 10월 2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100만부 판매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황보름 작가(오른쪽)와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 클레이하우스 제공
세계 35개 언어권, 50개국에 번역돼 110만부 이상 판매된 한국 소설이 있다. 유명작가의 책도 아니었고, 문학 출판은 처음이었던 1인 출판사에서 나왔음에도 2022년 국내 출간 이후 약 4년 만에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이하 ‘휴남동 서점’)(클레이하우스) 얘기다.
서랍 속 소설, 전자책으로 출발해 세계로
클레이하우스에 따르면 <휴남동 서점>의 전 세계 약 110만8000부 판매를 기록했다. 한국어판과 영어판이 각각 30만부 이상, 튀르키예어판이 20만부 이상 팔렸다. 포르투갈어판(브라질)은 10만부 이상, 스페인어판·폴란드어판·일본어판은 각 3만부 이상 판매됐다. 이탈리아어판·말레이시아어판·태국어판·대만 번체자판 판매고는 각각 1만부 이상이다. 올해 판매 실적이 추가될 경우 집계 숫자는 현재 수치를 크게 뛰어넘을 것으로 출판사 측은 전망했다.
소설은 주인공 영주가 서울의 한 주택가에 작은 서점을 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서점에서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삶의 속도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내 한국 대표 ‘힐링 소설’로 불리며 호응을 얻었다. 책이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황보름은 프랑스·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10개국 넘는 곳에서 북토크를 통해 독자들을 만났다.
책의 시작은 미약했다. 황보름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투고한 에세이는 번번이 거절당했고 어렵게 출간한 작품도 시장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첫 소설인 <휴남동 서점>은 한동안 책상 서랍에 묻혀 있다가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 되면서 2021년 전자책 구독 플랫폼 밀리의서재에서 공개됐다.
이후 밀리의서재의 제안으로 1인 출판사 클레이하우스가 2022년 종이책으로 국내 출간했다. 출판사도 작가도 무명에 가까웠지만 책은 초기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누적 100만부 판매 기념 스페셜 에디션 표지. 클레이하우스 제공
“저를 치료해줬어요” 한국형 ‘힐링 소설’로 인기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중구의 한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열린 ‘휴남동 서점’ 누적 100만부 판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의 역량, 세계 출판 트렌드와 맞물린 소설 스타일을 흥행 요인으로 꼽았다.
윤 대표는 “출간 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많은 국가에서 판권 문의가 들어왔다”며 “당시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같은 일본의 힐링 문학이 인기를 끌었다”며 “<휴남동 서점>이 치열한 경쟁, 공동체의 와해 등 사회상을 반영하는 힐링 소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보름 작가의 SNS에는 지금도 <휴남동 서점>을 읽은 독자들 보낸 메시지가 넘친다. 작가는 최근 받은 소감이라며 메시지 하나를 읽어줬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사는 마르타라고 합니다. 27살이고요. 심각한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이 책이 며칠 만에 저를 치료해 줬습니다. 그냥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영어판이 출간되면서 전 세계 독자들을 폭넓게 만날 수 있게 된 것, 2024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한 것도 해외 인기를 높이는 변곡점이 됐다. 황 작가는 “영어판이 나온 뒤 영어로 먼저 책을 읽은 스페인, 프랑스 독자들이 자국판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왔다”고 말했다.
해외에 수출되는 한국 문학 작품은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휴남동 서점>은 35개 언어권에 판권이 팔린 가운데 번역원의 지원을 받은 사례가 10건에도 못 미친다. 클레이하우스 측은 해외 출판사들이 작품의 대중성과 상업성을 믿고 판권을 구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영문판 표지. Bloomsbury Publishing (UK) 제공
해외 시장으로 “출판 기획 시야 넓힌 책”
<휴남동 서점>의 성공은 문학상 수상작, 유명 작가의 해외 진출이라는 기존의 성공 공식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출판계의 관심을 받는다. 윤 대표는 “지난 4년간의 경험으로 국내 시장만 보지 않는 비전을 가지게 됐다”며 “출판 기획의 시야를 넓히게 됐다”고 말했다. 1인 출판사로 시작한 클레이하우스는 현재 직원 5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비롯해 해외 도서전 참석 등 1년에 서너 차례는 해외 출판사와 만나며 세계 출판 트렌드를 익힌다.
최근엔 한국 문학·출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젊은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기도 한다. 한 출판사 대표는 “젊은 작가들은 좋은 번역자와 먼저 관계 맺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일부 출판사들은 해외 유명 출판사의 성향에 맞춰 수출 전략을 짜기도 한다. 해외 출판 경향에 맞춘 기획형 소설도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출판 흐름은 어떨까. 윤 대표는 “일본의 공포, 기담 소설이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 보니 공포나 기담을 많이 찾는다. 해외 출판의 관심사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트렌드에 맞춘 책을 낸다고 무조건 성공할 수는 없다. 황 작가는 <휴남동 서점>도 최근 발매한 신작 <윗집 부부>도 “쓰고 싶은 것을 쓴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말했다. 좋은 이야기가 먼저인 것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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