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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18, 2026

[책과 삶]누가 봐도 성공했는데···"가난하게 컸어?" 질문에 쫓기는 ‘계급횡단자’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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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남주 작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이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32쪽 | 1만8000원

<재이>는 작가 조남주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그가 2016년 <82년생 김지영>을 발표한 것이 딱 10년 전의 일이다.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던 성차별을 드러냈던 작가는 이제 서울 달동네에서 한강 뷰 아파트로 자신의 삶의 궤적을 옮겨간 한 여자를 통해 가난·계급·욕망이라는 키워드를 다룬다.

주인공 재이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이다.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이다.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이다. 스펙이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이다.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사고나 행동 체계가 달랐고, 동시에 내 가족은 내가 쓰는 어휘를 이해하지 못했다. …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고 때로는 죄책감을 느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평생 주변을 속이고 살아온 셈이다.”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재이는 사고를 당해 술만 마시는 아버지, 교육에는 관심 없는 부모 밑에서 방치되듯 자란다. 다행히 중학교 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한 은행이 운영하는 장학재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고 재단 후원을 통해 대학까지 진학한다. 졸업 후 자신이 1기로 참여했던 장학 재단의 모기업인 은행에 원서를 써 합격했고 이곳에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돕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 사업을 담당한다. 자전적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이를 기반으로 강연도 한다. 단단한 직업에 주식과 코인으로 대박을 낸 남편의 자산까지 합쳐 그는 한강 뷰 아파트 43층에 입성한다.

누가 봐도 성공했는데 그는 안이 텅 비었다고 느낀다. 그간 오로지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에 대학과 회사에서 만난 이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난한 시절 몸에 밴 습관은 사회에서 만난 이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어색하게 만든다. 그런데 더 이상 가난하지 않기에, 가난하지 않기 위해 대학 시절 가족을 버리고 나왔기에, 이제 가난을 입에 올리는 것에도 죄책감이 든다. 부와 빈, 양쪽 세계 모두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이 된 재이는 사회에서 오는 피로를 관계의 단절, 즉 ‘손절’이라는 행위로 해결한다.

단순한 줄거리의 소설에서 작가의 인장을 드러내는 것은 소설의 기술 방식이다. <82년생 김지영>은 가상의 인물인 김지영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와 기사들을 주석처럼 달아 소설을 일종의 사회학 보고서처럼 보이게 했다. 이 같은 방법은 이번에도 두드러진다.

재이의 엄마가 남자 형제들에 비해 차별받은 상황을 이야기하다 “<복학왕의 사회학>에는 지방대생의 부모 세대 인터뷰가 나오는데, 남성의 경우 가부장이 될 준비를 하며 산단다”라는 문구가 나오거나, 계층 이동을 한 재이의 모습을 보여주다 “샹탈 자케는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에서 하나의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한 개인을 ‘계급횡단자’라고 이름 붙이고, 그 원인과 그들의 기질에 대해 설명했다”는 식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과학 서적의 주요 개념이 이야기의 중간중간 등장한다. 이 같은 기술 방법은 재이라는 등장인물이 비록 가상이기는 하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찰 가능한 인간 유형이라는 객관적인 현실을 독자에게 깨닫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다만 200쪽 조금 넘는 소설에 이 같은 참고 자료의 인용이 꽤 많다 보니 이야기 몰입이 종종 깨지는 느낌이 든다.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상사가 부당한 일에 대응하지 않는 후배에게 “가난하게 컸어?”라고 묻는 장면. 유튜브 캡처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상사가 부당한 일에 대응하지 않는 후배에게 “가난하게 컸어?”라고 묻는 장면. 유튜브 캡처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이자 연기 챌린지 중 하나인 “가난하게 컸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해당 대사는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상사가 부당한 일에 대응하지 않는 후배에게 건네는 말이다. 속뜻엔 ‘가난해서 부당한 일도 잘 참느냐’는 일종의 모욕이 담겼다. 어느 모로 봐도 폭력적인 말이 밈이 되어 웃음을 주는 상황이 기묘하다.

언제부턴가 가난은 혐오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이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보다 금수저 부모 밑에서 태어나 당당히 부를 과시하는 이를 더 선망한다. 소설 속 재이는 어떤가. 그는 자신의 가난을 드러내 성공을 맛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과거와 진솔히 마주할 용기가 없다. 가난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소설은 끝내 재이의 심연으로 가닿지는 못한 듯하다. 그렇기에 소설은 재이가 책 속에서 쓰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성공담보다는 실패담, “멈추지 않는 불안, 우울, 혼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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