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취향]‘꽃과 여인’으로 그린 내면의 세계…다시 만나는 임직순
임직순 ‘소녀’(1986) 서울미술관 제공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임직순(1921~1996)은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립니다.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화를 공부했고, 1957년 국전에서 ‘좌상’으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1961년 조선대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길렀고, 무등산을 비롯한 남도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색채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일군 작가입니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그의 작고 30주기 특별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유화 약 80점을 비롯해 드로잉과 수채화, 판화 등을 선보입니다. 추상회화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흐름 속에서 임직순 같은 구상화가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는데요. 이번 전시는 익숙한 대상들을 그린 그림 앞에서 색과 형태, 붓질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느껴보자는 자리입니다.
화병에 꽂힌 꽃과 의자에 앉은 여인들은 임직순이 평생 즐겨 그린 소재입니다.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선, 두터운 물감이 어우러진 화면이 눈길을 끕니다. 인물화에서도 여인의 얼굴뿐 아니라 자세와 옷, 의자와 주변 공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전시 제목은 작가가 생전에 남긴 말에서 따왔습니다. 꽃이나 사람을 눈에 보이는 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마주한 자신의 감정을 담고 싶었던 것이지요. 말년으로 갈수록 형태는 단순해지고 색과 붓질은 한층 자유로워집니다.
임직순 작가의 생전 작업 모습. 유족 제공
그림 곁에는 작가의 일상도 놓여 있습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1980년대 임직순은 오전에는 여성 모델을 바라보며 인물화를, 오후에는 아내가 준비해준 꽃을 병이나 항아리에 꽂아 정물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모델이 앉았던 라탄 안락의자와 작가가 실제 사용했던 화병, 물감이 굳은 팔레트도 나왔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붓을 들었던 화가의 일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꽃과 여인에 비해 덜 알려진 풍경화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여행지에서 수없이 남긴 스케치가 화실에서 유화로 이어졌습니다. 처음 공개되는 미완성 유작 ‘팜트리’(1996)는 생전 쓰던 이젤과 함께 놓였습니다. 작고 전해 미국에서 본 풍경을 그리던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이어진 화가의 작업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은 미술품 컬렉터로 알려진 안병광 유니온그룹 회장이 2012년 문을 연 사립미술관입니다. 안 회장은 20여 년 전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그린 임직순의 작품이 경매에서 유찰되자 1800만원에 사들였습니다. 이후 유족을 찾아가 작품을 더 구입하며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눈길을 끌었던 그 여인 그림이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맞습니다.
그림을 보고 나서는 미술관과 함께 자리한 석파정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셔도 좋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였던 곳입니다. 가을빛이 깊어가는 날 좋은 나들이 코스가 될 것 같습니다.
같은 미술관에서는 작가 28명의 서로 다른 시선을 담은 ‘대체로 그렇다 그렇지 않다’, 스테인리스 조각전 ‘한데살이: 모여서, 무엇이 되다’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임직순전과 ‘대체로 그렇다 그렇지 않다’는 내년 2월14일까지, ‘한데살이’는 올해 12월27일까지. 매주 월·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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