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공간이 될 때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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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란 | 작가·‘경상의 말들’ 저자
밤 깊은 시골길, 단성면 소재지에서 조금 떨어진 경남 산청군 평생학습센터 불빛이 환하다. 단성면은 사직단과 삼우당 문익점의 목화 시배지가 있는 오래된 동네다. 하지만 저녁 6시가 지나면 여느 시골처럼 적막하다. 그래서인지 캄캄한 시골길에서 만난 학습센터는 마치 밤바다의 등대처럼 반갑다. 주차장을 채운 차들과 사람들의 와글거리는 소리…. 이곳에 학습센터가 들어선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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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한 신안면 소재지는 이 일대에서 가장 활기가 넘친다. 원래도 상권과 교통의 요충지였지만, 서울 직통버스 노선이 생기면서 유동인구가 더 늘었다. 2020년에는 작은 영화관과 수영장을 갖춘 체육센터가 들어섰고, 같은 해 지리산도서관도 문을 열었다. 몇년 사이 주민들은 확연히 달라졌다. 낮에는 딸기 하우스며 밭일을 하고 저녁에는 영화를 보고 수영장·헬스장을 드나드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30~40대 청년 귀촌인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이들은 귀촌 지역을 결정할 때 지역 내 공공 인프라가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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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시골의 번듯한 공공시설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엇갈린다. 인구도 적은데 과도한 예산을 썼다는 서울수도권 중심의 효용성 비판과 인구 감소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문화적 고립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맞선다. 2000년대 중후반 줄줄이 들어선 농어촌 체험시설이나 관광시설들이 사업 종료 뒤 방치된 사례를 여럿 봐온 터다. 하지만 균형발전과 인구 분산을 내세우면서, 인구 감소지역의 기본적인 문화·복지 투자를 멈춘다면 이 역시 모순이다.
산청군 같은 지역에서 공공시설 이용자 수가 적은 것은 당연하다. 수도권 대형 복지관 수준의 가동률을 기대할 수 없다. 인구 감소지역의 학습센터, 체육관, 도서관 등 공공시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지역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의 질이자 공동체의 거점이다. 단지 효율과 규모의 경제만 따진다면 지역에는 그 어떤 공공시설도 들어설 수 없다. 필요 이상의 개발이나 토목 공사는 경계해야 하지만, 주민의 일상을 보듬는 인프라는 경제성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인구도 줄면서 왜 계속 짓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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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부가 연간 1조원 규모로 투입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상당수가 하드웨어 구축에 편중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 조사를 보면 기금 사업 70% 이상이 여전히 시설 건립과 인프라 조성에 쏠려 있다. 이를 두고 제일 편한 예산 집행이니 그렇다는 등 지적하지만 어디 이것뿐일까. 주민들에게 필요해서, 혹은 인구 유출은 막고 유입이 될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중요한 것은 활용도가 낮으니 ‘짓지 마라’나 ‘없애자’가 아니라, 이미 있거나 지금 짓고 있는 공공 인프라의 활용도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다.
하지만 공공 인프라의 활용을 다루는 지자체 행정은 여전히 오랜 관행에 갇혀 있다. 정부가 2023년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법적 체계를 정비했음에도, 지자체는 지역과 실제 상호작용하는 인구를 다정히 끌어안지 못한다. 크고 작은 강연이나 문화 프로그램 참여 자격조차 여전히 ‘관내 주민등록자’인지부터 확인하는 게 단적인 예다. 주민등록 주소지에만 매달리는 좁은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지역 인프라의 일차적 주인이 주민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인구 유출을 막고 생활·관계인구를 늘리자면서, 정작 행정이 이들을 밀어내는 꼴이다.
행정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 공공 인프라는 관내 주민등록자를 넘어 누구나 자유롭게 오가는 열린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방문이나 여행, 단기 체류로 지역에 머무는 누구라도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고, ‘우리 모두의 공간’으로 확장된다면 시골 마을의 공공 인프라는 소멸지역이라는 잣대를 뛰어넘는 효용과 가치를 갖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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