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경유딜’에 트럼프 ‘젤렌스키 교체’ 주장까지…파장 일파만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헬기를 타고 도착한 뒤 백악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러 제재를 풀어 러시아산 경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교체 주장까지 내놔 사안이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의 충돌 국면으로 번졌다. 미국이 중재하는 3국 종전 협상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제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대통령을 세워야 할 때”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러 차례 합의할 수 있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 세계에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면서 “미국 농민과 목장주들에게 경유 문제로 어려움을 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러시아산 경유 공급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돌리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러시아가 미국 및 세계 시장에 경유 30만t 이상을 즉시 공급하고, 11월 중 50만t을, 그 직후엔 100만t 등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곧바로 내년 4월 7일까지 러시아산 경유의 판매, 운송, 미국 수입 등을 허용하는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가동된 제재를 일시 해제한 것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약한 결정”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이번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용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고유가 문제는 다음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을 향한 민심이 악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결과를 밝히며 “미국인들, 특히 우리의 위대한 농부와 목장주, 트럭 기사들을 위한 가격 인하가 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 효과는 제한적일 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 에너지정책연구재단의 마이클 린치 특별연구위원은 전날 AP통신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와중에 갑판 위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과 비슷하다”며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클레이턴 시글 선임연구원은 “가격을 낮추는 효과는 없지만, 러시아가 수익 감소 압박을 벗어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공조 체제는 시험대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 요청을 거듭 거절했다면서 이를 이번 합의 배경으로 들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전날 미 당국자 발언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요청을 6차례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마이애미에서 미국 등과 회담한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미국 측이 워싱턴의 경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핵심 정보 공유를 중단할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미국 측은 이를 부인했다.
종전 협상의 진로도 함께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젤렌스키 대통령 배척 기류가 재확인되면서 협상 당사국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들은 다음 주 모스크바와 키이우를 각각 방문해 종전을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유 공급 합의에 따른 갈등이 이런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불분명하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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