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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23, 2026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만들었다? [하종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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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 로비에서 진행한 파업 교육 모습. 필자 제공
한 회사 로비에서 진행한 파업 교육 모습.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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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노사 한마음’ 등의 이름이 붙는 행사에서 회사 경영진이 초청한 강사와 나란히 앞뒤로 강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마중 나온 회사 인사노무 관리자의 손에 들려 있는 계획서의 내 이름 뒤에 아예 ‘노측 강사’라고 표기돼 있는 것을 우연찮게 본 적도 있다.

어느 공기업 ‘노사 한마음 수련회’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내 앞 순서를 맡았던 ‘사측 강사’ 강의 뒷부분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인류 역사 최초의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 뭘 좀 제대로 알고 하세요.” 마치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선물로 준 것처럼 오해하기 딱 좋은 맥락이었다. 그 강사의 주장은 흔한 표현대로 반쯤 맞고, 반쯤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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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 시대의 숙련 노동자들은 특권층에 가까웠다. 식민지 경제가 전세계적으로 수요를 창출했으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숙련 노동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므로 그들의 특권은 갈수록 강화됐고, 당시 이미 주 4일제 근무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들 중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은 소생산 자영업자로 성장했다.

생산에 기계가 투입되면서 이들의 특권은 점차 소멸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저항이 바로 ‘기계파괴운동’이다. 당시 기계를 파괴했던 사람들의 주역은 우리가 막연히 짐작했던 것처럼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 대중”이 아니라 특권을 상실하기 시작한 숙련 노동자와 소생산 자영업자들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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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출현한 최초의 근대적 형태 노동조합의 명칭이 ‘트레이드 유니언’(trade union)이라는 사실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들에게는 대자본과의 관계에 있어 공정한 ‘거래’(trade)가 중요했던 것이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만들었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달갑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노동조합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숭고한 사회 정의 실현 등의 목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이익 집단을 왜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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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도 기득권 세력은 노동조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2천여명의 교사를 해직하고 3천여명의 공무원을 징계하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노조 포비아’ 현상은 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고, 그렇게 된 이유는 한편의 논문이 필요할 만큼 긴 설명이 필요하다.

국내 굴지의 기업 경영진 출신이 정부 요직에 임명됐다. 그 사람 외에도 그 기업 출신으로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 일이 그 회사의 노사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에게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처럼 느끼는 경영진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파업 독려 펼침막. 필자 제공
파업 독려 펼침막. 필자 제공

그 기업 계열사 노조가 임금 교섭이 결렬돼 부분 파업을 단행했다. 업종의 특성을 살린 파업 현수막들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한국 노동운동 사상 가장 예쁜 파업 현수막”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조합원 교육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최첨단 시설”이라는 찬사를 듣는 대형 빌딩들을 소유한 회사가 그 큰 건물의 회의실 한 칸을 내주지 않아 로비에 교육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 의자를 배치하려고 했더니 바닥에 흠집이 생긴다고 문제를 제기해 급히 롤카펫을 구해 깔았다. 건물 한편 강당에서 진행했으면 다른 사람들이 몰랐을 텐데, 사람들이 오가는 로비에서 앰프와 대형 모니터들을 준비해 두시간이나 진행했으니 오히려 널리 알려져 “우리가 이긴 싸움”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었다.

한 회사 로비에서 진행한 파업 교육 모습. 필자 제공
한 회사 로비에서 진행한 파업 교육 모습. 필자 제공

외부인의 눈에는 회사가 전에 없이 기고만장해진 것처럼 보였다. 노조 활동을 방해한 회사 관리자들이 죄책감을 느꼈을까? 오히려 “불순한 노조로부터 회사를 지킨다”는 정의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나가며 눈살을 찌푸린 시민들 역시 많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익 집단인 노동조합의 권리를 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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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탄생하면서부터 “특권을 상실하는 계급이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성격을 숙명처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의 도입으로 특권을 상실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출현하는 한 새로운 노동조합 역시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다. 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지라도, 노동조합을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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