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무임승차’ 적자 이유 70살로?…초고령 일본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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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에 가까운 요금으로 버스를 마음대로 갈아타며 절을 찾아 명물 메밀국수(소바)를 먹었던 게 아주 기억에 남아요.”
일본 유명 만화가 스가야 미쓰루는 22일 한겨레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도쿄도가 70살 이상 어르신에게 발급하는 ‘실버 패스’의 효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무료에 가까울 만큼 저렴한 대중교통 연간 패스로 도쿄도 안에서 ‘장거리 여행’을 떠나곤 한다. 스가야는 “우선 (도쿄도가 운영하는) 도영 지하철로 고다이라시까지 가서 도영 버스 최장노선을 타고 오메시까지 1시간15분을 이동했던 적이 있다”며 “버스 요금만 540엔(4700원)이지만 실버 패스 덕분에 돈을 내진 않는다”고 말했다. 스가야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1970년대 일본 유명 특촬물(특수촬영 영화) ‘가면라이더’의 만화판으로 데뷔한 유명 만화가다. 1983년에는 일본 전자오락 세대 문화를 만화로 옮긴 ‘게임센터 아라시’와 ‘곤니치와 마이콘’으로 쇼가쿠칸 만화상 아동부문상을 수상한 명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70살에 은퇴하면 일 때문에 가지 못했던 여러 여행지를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2021년 교토세이카대 만화학부 전임교수에서 퇴직한 그에게 ‘ 실버 패스’는 필수 아이템이다. 이걸로 도내 70살 이상 고령자들은 지하철·버스를 연간 최대 1만2천엔(10만6천원)에 이용할 수 있다. 애초 연간 2만510엔(21만7천원)이던 패스 값이 지난해 10월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소득이 적어 주민세를 내지 않거나 연간 소득이 135만엔(1190만원) 이하인 경우 1천엔(8800원)을 내면 된다. 해외 여행자들에게도 친숙한 신주쿠선·아사쿠사선 등 도영 지하철 주요 4개 노선과 도영버스, 도내 민영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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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야는 실버 패스로 도쿄 구석구석을 찾았던 이야기를 2023년 ‘무작정 떠나는 도쿄 실버 패스 여행’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책에서 “처음엔 세금으로 충당되는 실버 패스를 쓰는 게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실버 패스로) 외출하면 건강에 도움이 돼 병원에 갈 일이 줄어들고, 건강보험에 쓰이는 (고령자) 의료비도 줄어 그만큼 젊은 세대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스가야 역시 최근 콜레스테롤과 혈압이 높아지자 운동량을 늘리기 위해 승용차를 처분했다. 그는 “최근엔 신작 만화 단행본을 집필 중이라 외출하기가 어렵지만 일이 마무리되면 실버 패스로 일본 스모경기장이 있는 료코쿠나 유명 관광지인 아사쿠사, 우에노 등 구시가지 쪽을 산책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23년 기준 실버 패스 발급자는 103만명으로 도쿄도 70살 이상 고령자의 41%에 해당한다. 1000엔 패스 93만장, 2만510엔 패스 10만장이 발급됐다. 같은 해 실버 패스에 들어간 도쿄도 예산이 190억엔(1640억원), 이용자들 부담액이 30억엔(259억원) 규모였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실버 패스의 효과는 상당하다. 도쿄도가 실버 패스 이용자 실태조사를 조사한 가장 최근 자료인 ‘2018 도쿄도 실버 패스 관련 조사’를 보면, 고령자들은 장보기(62.3%), 병원 통원(56.4%), 취미 활동(38.4%), 지역 활동(13.3%)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실버 패스를 이용했다. 지난 6월 도쿄도에 접수된 ‘실버 패스’ 관련 시민 의견 가운데 “어머니가 건강하고 활력이 있는데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있었는데 실버 패스를 받은 뒤 거의 매일 즐겁게 외출하고 계신다”며 “이런 좋은 제도를 오래도록 유지해달라”고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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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교통 지원은 노인 삶을 유지하는 단순 이동 수단이란 점을 넘어 선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4년 ‘개호 예방·일상생활 지원 종합사업’ 지침에서 “고령자가 자립적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 이동과 외출 지원은 중요하며 특히 사회활동 참여는 이들에게 삶의 보람을 주고 사회적으로 돌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동 능력 저하로 외출이 줄면 사회적 고립, 신체 능력 저하로 이어져 고령자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원 연령을 낮춰 고령자를 더 폭넓게 인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일본 아키타현 아키타시는 2017년 시내 노선 버스를 100엔(880원)에 이용하는 ‘고령자 코인버스 사업’ 대상을 70살에서 65살로 낮췄다. 당시 아키타시는 “‘에이지 프렌들리 시티’(고령친화도시) 정책의 하나로 코인버스를 추진했다”며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줄어드는 고령층의 외출 기회를 늘리고 사회 참여, 삶의 보람을 만들기 위한 이동 수단 확보”를 배경으로 설명했다. 나고야시 역시 65살부터 소득에 따라 연간 1000∼5000엔(8640원~4만3200원)에 시영버스·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경로 패스’를 제공하고, 오사카부 사카이시도 65살부터 ‘외출응원카드’를 이용하면 시내버스와 노면전차 등을 한차례 100엔에 탈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홋카이도 삿포로시와 교토부처럼 인구 감소와 저출산·고령화, 세대 간 형평성 등을 이유로 지원 대상을 70살에서 75살로 이미 올렸거나, 단계적으로 올리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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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드는 한국도 ‘65살 이상 어르신 도시철도 법정 무임승차’ 제도가 시행된 지 40년을 넘었다. 1980년 5월 ‘경로우대제 실시안'이 시행돼 70살 이상 어르신에게 지하철 등 교통요금 50%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이듬해 노인복지법 제정으로 1982년부터 수혜 대상이 65살로 바뀌었다. 이어 1984년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지하철 할인율을 100%로 올렸고 65살 이상 고령자가 도시철도를 무료로 이용하는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일본의 고령자 실버 패스 제도처럼 ‘무임승차 연령’을 65살에서 70살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도시철도 무임 연령을 상향해 도시철도 운송 적자를 축소하고 절감된 재원으로 70살 이상 어르신에게 버스비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고령자와 장애인·국가유공자 등을 우대하는 무임승차 손실은 지난해 기준 최소 3833억원에 이른다.
앞서 대구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홍준표 시장 시절이던 2023년 무임승차 연령을 현행 65살부터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70살까지 올리기로 했다. 대신 시내버스 무임 기준을 현재 75살부터 매년 한 살씩 낮춰 2028년 70살 이상 무료가 된다. 노인복지법상 지원 대상인 ‘65살’을 강행기준이 아닌 재량기준으로 해석한 것이다. 서울도 대구의 선례를 따를 여지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서울연구원의 시민인식조사를 인용해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높이고 70살 이상에게 버스요금을 지원하는 방안에 응답자의 77.0%가 찬성했다”며 “직접 영향을 받는 65~69살에서도 찬성률이 57.4%였다”고 밝혔다.
고령자 교통지원을 단순히 ‘무임에 따른 적자’라는 논리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연구원이 2021년 펴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관련 ‘이슈 페이퍼’는 무임승차 제도가 고령자의 기본권인 이동권을 보장해 여가·경제 활동 증가, 자살·우울증 감소, 의료비 절감 등으로 3650억원의 편익(2020년 기준)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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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역시 이런 대목을 고려해 1973년 제도 도입 당시에는 70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무료승차권’을 지급하고, 이듬해 혜택을 민영버스로 넓혔다. 하지만 1980년부터 일정 소득 이상 고령자는 저가라도 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어 2000년 세대 간 불평등과 예산 부담 등을 이유로 무임제도를 완전히 없애고 최소한의 본인 부담을 지우는 현재 구조로 전환했다. 실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도의회에 출석해 “현행 제도에 젊은 세대와 부담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게 분명하고, 고령 인구 증가로 예산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자 교통 지원이 보편-선별 복지, 세대 간 문제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김명중 일본 니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겨레에 “일본의 무임승차 제도는 도입 당시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기 전이어서 고령자의 이동과 생활을 위해 무임 교통 복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며 “현재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는 인구 감소와 현역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기존 ‘세대 간 부양’뿐 아니라 (일정 소득 이상 고령자에게 비용을 물리는) ‘세대 내 부양’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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