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24억 벌려다 2720억 빚 떠안게 생겨···불법이라는데 빚은 하도급사가 갚아라?
수도권 일대에 우후죽순 지어진 생활형숙박시설과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에는 공실로 임대 광고가 붙은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해당 건물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배전 시공 전문 건설사인 A사는 2021년 12월 경기도 양주시 옥정 지식산업센터 공사에 하도급사로 참여했다. 시공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 총 970억원을 투입하는 공사였다. A사의 수주금액은 134억원이었다. 공사 금액만 보면 A사는 전체 공사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계약을 체결할 때만해도 ‘연대보증’이 이렇게 ‘덫’이 될 줄 몰랐다. A사는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시공사의 빚 970억원을 대신 갚는다는 ‘연대보증’을 섰다. 2021년 3월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상 불법이었으나, 당시 A사는 불법인지 몰랐다. A사 관계자는 “그땐 일감을 하나라도 더 따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다”고 말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시공사는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2023년 9월 A사의 연대보증 상환 의무가 현실화했다.
A사는 자기 돈 33억원을 더 들여 공사를 마쳤지만,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어겼다는 이유로 시공사의 빚(970억원)을 떠안았다. 여기에 신탁사가 추가로 투입한 금액(신탁계정대여금) 300억원까지 A사에 연대보증을 씌웠다. 134억원을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약 10배인 1270억원 빚으로 되돌아왔다.
기계설비 전문 건설사인 B사도 비슷한 처지다. B사는 2022년 8월 경기도 시흥시 시화지구 생활형숙박시설 공사에 하도급사로 들어갔다. 시공사가 PF대출을 받아 투입한 공사금액은 1200억원, 이중 B사가 하도급 받은 금액은 90억원이었다. B사 역시 시공사가 무너지면 시공사의 빚 1200억원을 떠안는 연대보증을 섰다.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했고 B사가 1200억원의 상환 의무를 지게 됐다. 신탁사가 투입한 250억원까지 더해 총 1450억원의 빚을 갚아야할 처지가 됐다.
A사와 B사가 수주 받은 금액은 총 224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들 회사가 갚아야 하는 돈은 12배가 넘는 272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이들이 떠안은 연대보증을 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금융회사 제재에 나섰다. 과징금 부과가 확정되면 이 역시 첫 제재이나 문제는 금융당국이 제재를 한다해도 하도급사들이 갚아야 하는 연대보증 빚 자체는 그대로 남는다는 점이다.
2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A사와 B사에 부동산 PF대출 연대보증을 씌운 메리츠금융 3사(증권·화재·캐피탈)를 비롯한 금융회사에 총 300억원 안팎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금까지 두 차례 심의를 거치고 마지막 서면 회의만 남았다. 제재심이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면 해당 안건은 금융위원회에 상정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 20조와 시행령 15조를 보면, 금융회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출 시 연대보증을 요구해선 안 된다. PF대출을 취급할 땐 분양사업자와 시공사에 대해선 연대보증을 할 수 있게 예외로 두고 있으나, 하도급사 등 그외 사업자에겐 불가능하다. 금소법이 시행된 2021년 3월 이후 금융당국이 이 규정으로 금융회사 제재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제재가 확정이 되더라도 해당 계약을 무효화한다는 조문이 현행 금소법엔 없다는 점이 논란이다. 계약 자체가 불법이라고 정부가 제재를 하더라도 ‘채권·채무’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나마 제재가 코앞에 다가오자 1순위 대주단인 메리츠금융 3사는 두 하도급사에 씌운 연대보증을 면책(없던 일로 처리) 조치했다. 과징금을 감경받고, 선순위인 만큼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3순위 대주단들은 면책에 나서지 않고 있다. 2~3순위 대주단이 회수할 수 있는 원금이 제한적인 데다, 과징금을 받더라도 채권을 행사하는 게 이익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도급사들로선 2~3순위 대주단이 자진 철회하지 않는 한 대안은 소송뿐이다. 민법 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를 근거로 이 계약이 무효임을 입증하기 위한 민사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2~3순위 대주단들의 근저당 설정, 가압류 행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하도급사들은 운전자금 등 대출을 받기 어렵고 수주를 따내기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에 향후 금융당국이 연대보증 관련 다른 금융사들을 제재 대상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하도급사들의 민사상 연대보증 빚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은 피해 구제는 당사자 간 민사로 해결하라는 식으로 제재에 초점을 두기 마련인데, 피해 하도급사로선 회복이 다급하다”며 “법적으로 불법으로 판정 내리면 그에 따라 피해 금액을 바로 돌려주도록 하는 등 피해가 구제될 수 있게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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