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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6, 2026

어머니는 집 창고에 총과 칼을 숨겨놓았을까 [금자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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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김진원의 막내삼촌 결혼식에 모인 일가친척들. 당시 8살이었던 김진원은 “공산당이 되어 이북으로 갔다”며 넷째 아들인 김옥주를 미워하고 손주인 자신에게까지 칭찬을 한번도 안 해준 할아버지(앞줄 가운데 삿갓 쓴 이)가 싫어 일부러 사진 찍을 때 빠졌다고 말했다. 뒷줄 맨 오른쪽이 김진원의 어머니 송명순이다. 김진원 제공
1956년 김진원의 막내삼촌 결혼식에 모인 일가친척들. 당시 8살이었던 김진원은 “공산당이 되어 이북으로 갔다”며 넷째 아들인 김옥주를 미워하고 손주인 자신에게까지 칭찬을 한번도 안 해준 할아버지(앞줄 가운데 삿갓 쓴 이)가 싫어 일부러 사진 찍을 때 빠졌다고 말했다. 뒷줄 맨 오른쪽이 김진원의 어머니 송명순이다. 김진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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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일가친척조차 우리 집에 오는 행동을 꺼렸다. 나의 재산은 쌀, 보리, 대나무, 과일 등의 농산물이었다. 경찰들이 울타리를 넘어와서 대나무를 찍어가고 죽순을 빼가고, 가축과 곡식을 가져가도 말 한마디 못했다. 더욱이 억울한 일은 우리 집에서 얻어먹고 이제는 잔뼈가 굵어진 마을의 이장 허OO이란 자가 이제는 돈도 좀 있고 경찰과도 친하다고 해서 빨갱이 가족 송명순이 창고 바닥을 파서 총과 칼 등을 숨겨 두었다가 빨갱이들에게 준다는 거짓 낭설을 경찰에 알린 것이다.”

5월 김진원 선생과 만난 자리에서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나오는 인용문 하나를 읽어주었다. 제헌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 김옥주가 국회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뒤 고향 광양에서 세 자녀를 돌보고 있던 어머니 송명순이 고초를 겪는 대목이었다. 집 창고 바닥에 총과 칼을 숨겨두었다가 빨갱이들에게 나눠준다고 의심받는 이야기였다. 김진원 선생이 말했다.

“그거 제가 잘 알죠.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시고 제가 받아적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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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팔순이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말을 적으라고 했다. 받아쓰기는 1년간 계속됐다. 국회프락치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 동네 사람들과 갈등을 빚다 경찰에 끌려가고 몸 고생 마음고생 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렇게 쓴 분량이 대학노트 10여쪽이었다. 이는 김진원 선생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가족 자서전*의 일부로 들어갔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에게도 전달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5년 4월15일 전원위원회에서 ‘1949년 국회프락치 사건(고 김옥주, 고 김병회)’의 진실규명을 의결했다. 김진원 선생이 2021년 6월 국회프락치 사건 증거조작 등을 조사해달라는 신청서를 낸 이후 4년 만이었다. 조사개시안은 한 차례 보류되는 진통과 우여곡절을 겪다 3년 만에 가까스로 통과됐다. 이후 조사와 보고서 작성, 진실규명 의결까지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특별법으로 정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기한이 딱 한 달 남은 시점에 모두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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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결정문은 김진원 선생이 최우선으로 요구한 사건 조작 여부, 즉 남로당 간첩 혐의가 실제인지는 다루지 않았다.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위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명백한 한계였다. 한편으로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어떻게든 진실규명의 첫발이라도 떼려는 조사 주체의 전략이기도 했다.

2024년 12월 진실화해위원장이 K에서 P로 바뀌었다. P는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 3일 뒤인 12월6일 임명한 인사였다. “과거 국가폭력 조사기구의 수장이 내란수괴로부터 임명을 받았다”는 비난과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P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대통령 윤석열이 탄핵당했다. P의 자리는 꿋꿋했다. 윤석열이 임명한 인사가 진실화해위원 과반을 넘는 구도 역시 바뀌지 않았다. 13명의 국회의원이 연루된 사건이 ‘조작’이냐는 민감한 사실관계를 정면으로 다룰 경우 전원위원회에서 표결 끝에 기각되거나 지연될 가능성이 컸다. 조사기한도 얼마 안 남은 상태였다. 안건의 쟁점을 좁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자는 게 조사관과 조사국장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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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위원회를 통과한 결정문의 골자는 고문 등 인권침해였다. 진실규명 신청인들의 아버지였던 국회의원 김옥주와 김병회는 헌병들에게 체포될 당시 영장을 제시받지 못했고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금 기간을 초과했으며 자백 강요 속에 가혹 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됐다. 이는 1950년 3월14일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작지만, 새로운 첫 문제제기였다. 75년 만이었다. 여기엔 ‘후손들에 대한 인권침해’도 주요한 항목을 차지했다. 총과 칼을 집 창고에 숨겨놨다가 빨갱이에게 준다고 의심받던 김진원 선생 어머니 이야기는 그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경찰은 창고를 수색했을까.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런 내용을 받아적으라며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경찰관에게 ‘정말 우리 집을 수색해 보시오’라고 했더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수색도 안 해보고 결국 나는 억울하게도 누명을 쓰게 되었고, 가장 추운 1월에 15일 동안 돌 지난 아이 진원이를 데리고 경찰서 창고에서 혹독한 추위 속에서 지내야 했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이어서 온몸이 저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매일 자정쯤 되면 숙직하는 경찰들이 장작불을 피워 놓고 진원이를 불러내서 불을 쬐게 해서 추위를 녹이게 했다. 철모르는 진원이는 낮이면 경찰서를 막 다니면서 식당에 들어가서 경찰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경찰들이 1일 3번씩 갖다 주었다. 그 밥과 반찬은 창고에 갇혀있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1950년 1월이었다. 돌이 갓 넘은 김진원도 경찰서 창고에 갇혔다. 세상 모르는 천진한 얼굴로 경찰서 내부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은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아니면 더 마음 아프게 했을까. 그나마 15일 만에 풀려난 것은 재력가였던 집안 위세 덕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토착 지주였고, 아버지의 형제들은 모두 이승만을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지난 5월22일 서울 중랑구 망우역 인근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진원 선생이 이야기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지난 5월22일 서울 중랑구 망우역 인근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진원 선생이 이야기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진실화해위 결정문에 만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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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짜리죠. 사건 조작 여부는 못 건드렸으니까요. 그래도 조사관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어요. 새로 출범한 3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또 신청했어요. 이번엔 정말 조작 여부를 가려달라고요.”

“결정문 보니 아버지만 고생하신 게 아니에요.”

“네. 어머니와 사촌 형, 그리고 저까지. 큰아버지 큰아들이었던 진석 형님은 ‘아버지로부터 반정부 지방조직을 구성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하라’면서 전기고문을 당했대요. 이후 계속 사찰과 감시를 받았고요. 저도 절대로 법대는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랐어요. 신원조회 때문이죠.”

“그래서요?”

“제가 서울 사촌 형 집에 묵으며 세 번 시험을 쳐서 서울대 공대를 갔어요. 그리고 7년 동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하버드 가려고 공부했는데, 발버둥 쳐도 해외 출국을 위한 신원조회가 통과 안 되더라고요. 결국 삼환기업이라는 건설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해외건설 현장에 나가야 하는 거예요.”

“또 신원조사가 문제였겠네요.”

“사우디를 가야 하는데 통과되지 않았죠. 한 번은 치안국에서 전화가 와서 사우디 밑에 있는 예멘 가서 근무하래요. 거기 북한대사관이 있거든요. 정보원 역할을 하라는 거죠. 아버지 때문에 나한테 연락이 올 거라면서. 거 참. 못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운 좋게 신원조회가 여섯번 만에 통과됐어요. 사우디에서 20년 현장소장을 했습니다.”

김진원 선생은 힘차고 밝았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풍겼다. 서울에 있는 사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삼수 끝에 원하는 대학에 붙었던 것처럼, 여섯번 만에 신원조회의 벽을 뚫고 사우디에 간 것처럼, 78살의 나이에 기어코 아버지 사건의 조작 여부를 가려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열 살 누님인 강금자 여사를 처음 대면한 것은 지난해 6월 반민특위 기념사업회 행사에서였다. 지금은 자주 어울리는 사이가 됐다. 또 한 명이 있다. 5년 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함께 냈던 제헌국회의원 김병회의 딸 김영자다. 그가 이겨낸 세월에 관해 들어볼 차례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백운산, 섬진강, 수어천-김상의 가(家) 이야기’(김진휴·김진원·김진혁 지음, 도서출판 좋은땅, 2024)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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