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합병에 서학개미만 세금…미국 주주는 안 내는데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테슬라가 합병하면 한국 투자자는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아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한국 세법은 해외 기업 합병으로 옛 주식이 새 주식으로 바뀌는 순간을 ‘판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월가가 가장 유력하게 보는 ‘스페이스X의 테슬라 인수’라면 대상은 테슬라 주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테슬라 보관금액은 지난달 30일 기준 231억달러(약 31조원)로 해외 주식 가운데 가장 많다.
황당한 투자자들은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달 2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해외주식 조직재편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이연 제도 도입’ 청원이 올라왔다. 과세이연은 세금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새 주식을 실제로 팔 때까지 미뤄주는 제도다. 이 청원은 3일 동의 2만5000명을 넘었다. 21일까지 5만명을 채우면 국회 상임위원회가 심사를 하게 된다.
◇안 팔아도 ‘판 것’으로 간주
소득세법은 주식을 파는 것뿐 아니라 다른 주식과 맞바꾸는 것도 양도로 본다. 현금이 한 푼 들어오지 않아도 옛 주식을 팔고 새 주식을 산 것으로 계산해, 차익에 22%(지방소득세 포함) 세금을 매긴다. 해외 주식은 1년 동안 판 주식의 차익을 모두 더한 뒤 250만원을 빼고 나머지에 세금을 매긴다.
국내 기업끼리 합병하거나 주식을 맞바꿀 때는 다르다. 요건을 갖추면 새 주식을 팔 때까지 세금을 미뤄준다. 이 특례는 외국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도 요건을 갖춘 주식 맞교환에는 자국 투자자의 세금을 새 주식을 팔 때까지 미뤄준다. 같은 테슬라 주식을 들고 있어도 미국 투자자는 합병 때 세금을 내지 않고, 한국 투자자는 내는 셈이다.
선례도 있다. 미국 우주기업 로켓랩은 작년 5월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면서 기존 주식 1주를 새 회사 주식 1주로 바꿔줬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를 양도로 볼지를 두고 처리가 엇갈렸다. 재정경제부가 ‘양도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면서 논란이 정리됐고, 로켓랩 주주들은 지난 5월 세금을 냈다.
2023년 1월 3일 테슬라 주식 1000만원어치를 산 투자자가 있다고 하자. 당시 주가는 108.1달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271원이었다. 지난 2일 종가(403.82달러)와 환율(1343.8원)로 따지면 이 주식은 3950만원 정도가 됐다. 합병 때 테슬라에 20% 웃돈이 붙으면 4740만원어치 스페이스X 주식을 받게 된다. 세법은 이를 4740만원에 판 것으로 본다. 차익 3740만원에서 250만원을 뺀 금액에 22%를 매기면 세금은 768만원 정도다. 손에 쥔 현금은 없는데 합병 이듬해 5월에 세금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 받은 스페이스X 주가가 그 뒤 떨어져도 세금은 줄지 않는다.
◇합병 구조 따라 납세자 정해져
누가 세금을 내느냐는 어느 회사가 어느 회사를 사느냐에 달렸다. 스페이스X가 테슬라를 사면 테슬라 주주가 주식을 바꿔야 하므로 테슬라 주주가 낸다. 스페이스X가 테슬라 법인을 자회사로 남겨두는 방식이라도 테슬라 주주 손에 스페이스X 주식이 들어오면 마찬가지다. 반대로 테슬라가 스페이스X를 사면 스페이스X 주주가 낸다. 두 회사를 새 지주회사 아래 함께 넣으면 양쪽 주주가 모두 낸다. 국내 투자자의 스페이스X 보관금액은 30억달러(약 4조원)다.
월가는 스페이스X가 테슬라를 사는 쪽을 유력하게 본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 등이 이 구조를 전망한다. 스페이스X의 덩치가 더 큰 데다 머스크의 의결권이 걸려 있어서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에서 1주에 10표가 붙는 특별 주식을 혼자 갖고 있어 의결권이 80%를 넘는다. 테슬라 지분은 19.8%에 그친다. 스페이스X가 인수자가 되면 이 특별 주식이 합병 회사로 이어진다. 바클레이스는 합병 회사에서 머스크의 지분은 37%지만 의결권은 56%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테슬라가 인수자가 되면 이런 구조를 새로 만들기 어렵다. 머스크는 2024년 1월 “의결권 25% 정도 없이 테슬라를 AI·로봇 선두 기업으로 키우는 건 불편하다”고 했다.
머스크는 지난달 20일 두 회사 이사회가 합병을 검토할 특별위원회를 각각 꾸렸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두 회사가 내년 상반기까지 합병 계약을 맺고 트럼프 대통령 임기 안에 거래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보도했다. 내년 안에 거래가 끝나면 세금 납부 기한은 2028년 5월이 된다.
◇대비책 마땅찮아…그나마 배우자 증여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몇 가지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해마다 차익이 250만원이 될 만큼만 팔아 공제를 쓰는 방법이 있다. 다른 해외 주식에서 낸 차익이 없다면 한 해 55만원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다. 비중을 줄일 생각이었다면 팔고 끝내면 되고, 비중을 유지해 합병 웃돈을 받고 싶다면 판 뒤 바로 되사면 된다. 다만 차익이 수천만원인 투자자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250만원 공제는 1년에 한 번뿐이라 합병이 끝나는 해에는 합병 차익에서 자동으로 공제된다. 그해에 따로 팔면 공제를 한 번 더 받을 수 없다. 효과를 보려면 합병 전년까지 써야 한다.
합병이 끝나는 해에 손실 난 다른 해외 주식을 파는 방법도 있다. 해외 주식 세금은 그해 판 주식의 이익과 손실을 모두 합친 뒤 매기기 때문이다. 해외 주식 손익은 해마다 따로 계산하고 다음 해로 넘어가지 않는다. 손실을 합치려면 합병이 끝나는 해 안에 팔아야 한다.
그나마 효과가 큰 것은 배우자 증여다. 배우자에게는 10년 동안 6억원까지 증여세 없이 줄 수 있다. 증여받은 사람의 취득가는 증여 시점 주가로 정해진다. 그동안 쌓인 차익이 세금 계산에서 빠지는 셈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2025년 이후 증여받은 주식은 1년 안에 팔면 증여 시점 주가가 아니라 원래 산 사람의 취득가로 세금을 계산한다. 증여로 세금을 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이렇게 되면 증여 효과가 사라진다. 합병으로 주식이 바뀌는 것도 세법상 파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증여 효과를 보려면 합병이 끝나기 최소 1년 전에 증여를 마쳐야 한다.
세금이 무서워 미리 주식을 다 파는 것도 답은 아니다. 지금 팔면 올해 차익에 바로 세금이 붙고, 합병 때 붙을 수 있는 웃돈도 받지 못한다.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근본 해법은 제도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작년 로켓랩 사례 때 국내 합병과의 차별을 두고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식 합병에도 국내처럼 과세를 미뤄주는 장치가 생기면 세금은 주식을 실제로 팔 때 낸다. 지금은 합병 날 주가로 세금이 정해지고, 그 뒤 주가가 떨어져 생긴 손실은 돌려받기 어렵다. 과세를 미루면 실제로 판 값으로 세금을 계산하므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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