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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28, 2026

영국·프랑스·일본까지 “집에 3일치 비상식량 쌓아두라”…달라진 위기 대응법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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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긴급 비상식량 세트를 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긴급 비상식량 세트를 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 각국 정부가 가정에 비상식량과 생필품을 미리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국민에게 사흘 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을 마련하라고 안내했고, 일본 정부도 최소 3일분의 식량과 물을 비축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 네덜란드도 72시간 비상 대비를 안내했다. 북유럽으로 가면 권고 기간은 더 길어진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일주일을 기준으로 가정의 비상 대비를 강조했다.

각국이 비상식량을 준비하라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각국 정부에 따르면 비상 대비의 목적은 전쟁뿐 아니라 자연재해와 기반시설 중단 등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는 데 있다.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진 것은 물론 폭풍, 산불,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일상에 필요한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어서다. 도로와 통신망이 손상될 경우 구호물자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가정의 비축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후지TV FNN 프라임 온라인은 27일 호소노 고시 방재담당상이 다음달 2일 국민에게 재난 대비를 강화하도록 ‘긴급 요청’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새 방재청이 출범하는 시점에 맞춰 중앙부처와 전국 지방자치단체, 국민에게 대비를 당부한다는 것이다.

호소노 담당상은 후지TV 온라인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소 3일분, 가능하다면 1주일분의 식량, 물, 화장실 용품 등을 집에 마련해달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대비 대상으로 언급한 것은 난카이 해곡 대지진과 수도권 직하 지진, 지시마 해구·일본 해구 인근의 거대 지진, 후지산 분화 등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재난이 발생하면 도로와 통신망 등 기반시설이 손상돼 구조와 구호물자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번 움직임을 새로운 비축 정책의 시작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일본 정부는 이미 대규모 지진 등 재난에 대비해 식량과 물을 최소 3일분, 가능하면 일주일분 확보하도록 안내해왔다. 이번 발표 계획은 새 방재청 출범을 계기로 국민의 자조적 대비를 다시 강조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식량뿐 아니라 화장실 용품과 대피소의 위생·생활 여건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국 정부 ‘비 레디’ 캠페인

영국 정부 ‘비 레디’ 캠페인

영국 정부도 앞서 지난 22일(현지시간) 국민에게 3일치 식량과 물을 비축하도록 권고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 총리실 산하 내각부는 이날 가정의 재난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비 레디’ 캠페인을 발표했다. 최소 72시간 동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량과 물을 마련하고, 정전이나 단수 등에 대비하라는 내용이다.

영국 정부가 제시한 배경은 일상적인 기반시설의 중단이다. 폭풍과 홍수 같은 악천후가 전기와 수도, 인터넷, 휴대전화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사이버 공격 등으로 필수 서비스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가디언은 이번 권고가 기후변화, 기술 의존도, 적대국의 위협 등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특히 현대 사회가 전력망과 통신망,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이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평범한 일상도 빠르게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영국 정부가 권고한 물품에는 1인당 하루 3ℓ의 식수와 3일치 비상식량이 포함됐다. 손전등과 여분의 배터리,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라디오, 현금, 구급용품, 담요 등도 준비 대상이다. 영국 정부는 비상물자를 한꺼번에 구매할 필요는 없으며, 평소 장을 볼 때 필요한 물품을 조금씩 추가하라고 안내했다.

프랑스 정부의 72시간 비상가방 인포그래픽

프랑스 정부의 72시간 비상가방 인포그래픽

유럽에서도 가정의 비상 대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3월 발표한 ‘대비 태세 연합 전략’에서 주민들이 비상 상황에서 최소 72시간 자립할 수 있도록 필수 물자를 준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재난 대비 안내서를 공개하고, 가정에서 비상 상황에 대비해 최소 72시간 버틸 수 있도록 비상가방을 준비하라고 안내했다. 가방에는 식수와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비롯해 손전등, 라디오, 구급용품, 상비약, 휴대전화 충전기, 현금 등을 챙기도록 했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도 기상 현상과 전기·수도·통신 중단 등에 대비하는 가정용 안내 책자를 배포했다.

북유럽 국가들의 권고 기간은 더 길다. 노르웨이 민간보호·비상계획국(DSB)은 2024년 가정의 자력 대응 권고 기간을 기존 최소 3일에서 일주일로 늘렸다. 전기와 수도, 하수도, 인터넷, 휴대전화망, 결제 시스템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주일을 버틸 수 있도록 식량과 물, 의약품, 난방 수단 등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스웨덴도 가정이 위기나 전쟁 상황에서 최소 일주일을 버틸 수 있도록 식량과 물, 조명, 통신 수단 등을 준비하라고 안내했다.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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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상식량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름만 들으면 군용 전투식량이나 장기간 보관하는 특별한 생존식품을 떠올리기 쉽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핵심은 정전이나 단수로 냉장고와 조리기구를 제대로 쓰기 어렵고, 마트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먹고 마실 수 있는 물자를 마련하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제시한 목록에는 통조림 고기와 생선, 채소, 말린 과일, 견과류 등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고 조리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이 포함된다. 일본 농림수산성도 재난 대비 식품 비축 안내에서 물과 쌀, 즉석밥,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 건면, 시리얼, 즉석국 등을 예로 든다. 평소 먹지 않는 비상식량을 한꺼번에 사들이기보다는 가족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조금씩 더 사두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물은 식량보다 먼저 챙겨야 할 품목이다. 영국 정부의 권고는 식수 기준으로 1인당 하루 3ℓ다. 성인 한 명이 사흘을 버티려면 식수만 9ℓ가 필요하다. 4인 가족이라면 3일분 식수는 36ℓ에 이른다. 이는 마시는 물 기준이므로 취사와 위생에 쓸 물은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보관 공간이 부족하다면 한꺼번에 모두 마련하려고 하기보다 가능한 양부터 확보하고 점차 늘리는 방법이 있다.

식량은 전기나 가스 없이도 먹을 수 있는 것을 우선한다. 참치·콩·채소 통조림, 즉석밥, 크래커, 견과류, 말린 과일, 에너지바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통조림은 따개가 필요한 제품인지 확인하고, 즉석밥이나 레토르트 식품은 조리에 필요한 물과 열원이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휴대용 버너를 준비한다면 연료를 확보하고 사용법과 안전수칙을 미리 익혀야 한다. 실내에서 숯불이나 야외용 연소기구를 잘못 사용하면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식량과 물만으로 비상 대비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전기가 끊기면 휴대전화 충전이 어려워지고, 인터넷이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충전된 보조배터리와 여분의 배터리, 손전등, 건전지식 또는 태엽식 라디오, 소액 현금, 구급상자, 상비약, 물티슈와 손 소독제 등을 함께 준비하는 이유다. 추운 날씨에 난방이 중단될 가능성에 대비해 담요와 따뜻한 옷도 챙겨야 한다. 영유아가 있는 집은 분유와 기저귀,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사료와 식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소개하는 방법 중에는 ‘롤링 스톡’이 있다. 평소 먹는 식품을 조금 넉넉히 구매해두고, 먼저 산 것부터 소비한 뒤 먹은 만큼 다시 채워 넣는 방식이다. 쌀이나 즉석밥,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처럼 평소에도 쓰는 식품을 중심으로 비축하면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일을 줄일 수 있다. 특별한 비상식량 창고를 만들지 않아도 주방의 식품 재고를 관리하는 습관만으로 대비를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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