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한-일 협력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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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주 동아시아재단이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개최한 한-일 고위급 전략대화에 참석했다. 한국과 일본의 여야 정치인, 전직 관료, 학자, 전문가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전환기 동북아 질서와 한-일 협력의 새로운 과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참석자 모두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해 매우 고무적이었다. 우호적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지난 8월4일 한국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 국제문화회관이 공동 실시한 한·일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의 54.3%가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 여론조사가 최초 실시된 2013년 이래 최고치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6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한국 응답자의 66.7%, 일본 응답자의 59%가 ‘한-일 관계가 좋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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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호재로 작용했다. 평소의 강성 반일 이미지와 달리, 이 대통령이 한·일 정상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실용 외교 노선이 한-일 협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거기에 더해 ‘과거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방기하려 할 때마다 한·일은 밀착했다’는 가설에 기초하여 한-일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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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한-일 협력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지정학적 위협 인식에서 한-일 격차는 컸다. 일본 쪽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군사 모험주의, 그리고 북한 핵의 고도화 등을 주요 위협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 ‘권위주의 축’(autocratic axis)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에 기초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전략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은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태 전략’을 넘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제안한 ‘아시아판 나토’ 구상까지도 적극적 참여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일본의 이러한 구상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와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 정부 역시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중요시하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적대 관계를 원치 않는다. 북한에는 강력한 평화 공존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그리고 러시아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바라고 있다. 더구나 한·미·일 남방 3각 축과 북·중·러 북방 3각 축 간의 신냉전 구도 부활을 피하고자 한다. 한국이 이 대결 구도의 최전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대결보다는 긴장 완화, 신뢰 구축, 예방 외교, 그리고 다자안보협력 구도를 선호한다. 따라서 일본이 주도하는 가치 지향의 지정학적 전략에 동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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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에서도 차이점이 드러났다. 회의 당일 나온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의 한-일 경제 공동체 제안 관련 아사히신문 인터뷰 기사가 주요 토론 주제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뭉치면 국내총생산(GDP) 6조달러에, 세계 4위의 경제권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한·일의 교섭력과 발언권은 막강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주요 인프라와 서비스를 공동으로 활용할 경우 기초 비용도 현격히 낮출 수 있다는 게 인터뷰 요지였다.
이 제안에 대한 일본 쪽 반응은 신중했다. 경제 공동체는 자유무역지대, 관세 동맹, 공동 시장, 경제 동맹, 그리고 통화 동맹이라는 단계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데, 이와 관련한 한-일 협력의 현주소는 참담하다는 것이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위기 직후 시작된 한-일 자유무역지대 협상은 2004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자유무역지대 하나 제대로 합의하지 못한 양국이 경제 공동체라는 큰 구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비관론이 나왔다. 오히려 공급망, 에너지 등 경제 안보협력에 역점을 두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한국 가입 등 손쉬운 사안부터 풀어나가자는 거였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 철폐나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타결 없이 일본이 한국의 시피티피피 가입을 지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한-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역사 문제를 외교, 안보, 경제 사안들과 분리하고 미래 지향의 원칙에 따라 두개의 트랙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독도, 위안부, 강제노역, 사도 광산 등 역사, 영토 문제에 대한 진전 없이 한-일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그뿐 아니다. 북한 문제 해법도 크게 달랐다. 중단, 감축, 폐기의 단계적 해법을 선호하는 한국과 선비핵화와 일본인 납치 문제 선결을 주장하는 일본의 틈새는 커 보였다. 한-일 협력, 참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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