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적 휴전 ‘올레시키’서 탈출한 사람들…“지옥에서 돌아왔다”
러시아 점령지인 올레시키를 떠나 우크라이나 통제지역으로 돌아온 주민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족 친지 등과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벨라루스와 맞닿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올레시키 주민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른 주민들은 안도와 환희가 뒤섞인 표정으로 땅을 밟았다. 4년8개월에 걸친 러시아 점령지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올레시키는 우크라이나 남부 드니프로강 인근 도시로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침공 당일 함락당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양국 무인기(드론)가 날아다니는 전선에 주민들이 고립됐다. 식량과 의약품이 바닥난 상황에서 5년 가까이 버텨야 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 지역에 국지적 휴전이 발효되며 한시적인 대피로가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교황 레오 14세 등이 중재한 결과다. 1일 오후 11시를 기해 휴전이 종료되면 언제 다시 대피로가 열릴 지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 통제 구역으로 돌아온 주민 상당수는 수년 간 익숙해진 공포와 죽음, 굶주림의 기억을 떠올렸다. 올렉산드르 스티오핀(75)은 미국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옥에서 돌아왔다. 그곳(올레시키)은 죽음의 지대”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몇 달 간 드론 공격이 확산하면서 주민들은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머리 위에 드론을 달고 사는 것 같았다. 그건 내면 깊숙하게 자리잡은 끊임없는 두려움이었다”고 말했다.
이반 예우헤노비치(48)”는 “봄 이후로는 기본적인 식량이 사실상 남아 있지 않았다. 각자 조금씩 비축해 둔 식량으로 버텼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다른 도시로 식량을 구하러 갈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차로 이동해 식량을 구하려던 사람들은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매일 누군가는 지뢰가 폭발해 죽거나 드론 공격 파편에 맞아 죽었다. 거리에 시체가 있어도 죽음을 감수하며 수습하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러시아군은 국지적 휴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거리의 시체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 점령지인 올레시키를 떠난 주민들이 3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통제지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지적 휴전 직전 올레시키에는 2000여명의 주민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게는 우크라이나 또는 러시아 통제 지역으로 대피하거나, 그대로 올레시키에 머무르며 물자를 지원받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구체적 인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멜라니아 여사 등은 이번 구출 작전으로 750명 이상이 올레시키를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담당관 드미트로 루비네츠에 따르면 대피 주민 중 최고령자는 94세, 최연소자는 갓 돌이 지난 아기였다.
우크라이나행 버스를 탄 사람들은 러시아 아나파에서 비행기로 벨라루스에 간 뒤, 그곳에서 버스로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우크라이나 언론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밝혔다.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고양이와 개, 앵무새, 너구리 등 반려동물이 담긴 운송용 우리들도 함께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대피가 실제 이뤄지는 것인지 믿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테티아나 후로바는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을 밝히지 않은 블라디슬라프(24)는 “휴전 선언 후 대피하는 도중에 우리를 폭격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너무 두려웠지만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떠났다”고 NYT에 말했다.
여전히 상당수 주민은 올레시키에 남아있다. 러시아 인권위원장 야나 란트라토바는 성명에서 “우리는 남기로 결정한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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