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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4, 2026

“대놓고 욕하진 않는데 더 괴롭다”···무시하고, 한숨쉬고, 혀 끌끌 ‘조용한 괴롭힘’에 떠는 직장인들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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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는데 대답이 없다. 업무를 보고하면 한숨부터 쉰다. 질문을 했더니 한참 동안 모니터만 바라본다. 어렵게 다시 말을 걸면 “그래서 뭐요?”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화를 내거나 욕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을 걸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최근 일본에서 직장 내 불쾌한 태도나 행동을 일컫는 ‘후키하라’라는 용어가 확산하고 있다. ‘후키겐 하라스먼트(不機嫌ハラスメント·불쾌한 태도를 이용한 괴롭힘)’를 줄인 말로 불쾌한 표정, 한숨, 혀를 차는 행동, 무시 등을 통해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고 과도하게 눈치를 보게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일본 매체들은 그동안 개인 성격이나 기분 문제로 여겨졌던 이 행동을 직장 환경의 문제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을 전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올해 부하 직원 100여 명을 둔 도쿄 경시청 간부가 부하의 반론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보고를 중간에 끊는 등의 행동을 반복해 ‘후키하라’를 한 것으로 인정돼 처분받은 사례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후키하라가 파워하라(パワーハラスメント·직장 내 권력형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주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위축되거나 직장 분위기가 나빠질 수 있다며, 이를 예방해야 한다고 전했다. 쓰노 가나미 가나가와현립보건복지대 대학원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직장 내 불쾌한 태도가 파워하라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누구나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직장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후키하라가 일본 직장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사도 나왔다. 일본 생활정보매체 닛칸스파는 지난 2일 민간기업 엠프로나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74.6%가 “직장에 후키하라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응답자들은 후키하라의 영향으로 ‘직장 분위기가 나빠진다’, ‘의사소통이 줄어든다’,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등을 꼽았다. 불쾌한 태도를 개인의 기분 문제로만 보지 않고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과 업무 환경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사실 직장 내 한숨, 무시, 배제 등 조용한 괴롭힘이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런 현상을 훨씬 오래 연구해왔다.

영국에서는 ‘무시하기’가 직장 내 갈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행동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인사·노무 전문기관 공인인력개발연구소(CIPD)는 올해 직장 내 괴롭힘과 갈등을 다룬 자료에서 ‘직장 내 무례’를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설명했다. 심각한 괴롭힘이나 폭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이메일에 답하지 않거나 회의에서 말을 끊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미묘한 행동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직장 내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직장 내 무례’는 일본의 후키하라보다 범위가 조금 넓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 다른 사람의 의견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행동, 말을 끊는 행동, 다른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 등이 포함된다.

미국 인사관리협회(SHRM)가 2024년 미국 근로자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6%가 조사 직전 한 달 동안 직장 내 무례를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답했다. 직장에서 가장 흔하게 경험하거나 목격한 행동은 다른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36%), 상대방이 말할 때 끼어들거나 말을 막는 것(34%), 과도한 감시 등의 마이크로매니징(32%) 등이었다.

미국 근로자 1611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가 직장 내 무례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답했고, 59%는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답했다. 또 37%는 관리자나 상사가 직장 내 무례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호주와 싱가포르에서는 두 나라를 비교해 이런 행동의 영향을 살펴봤다. 호주 캔버라대학교 연구진은 2019년 호주 화이트칼라 노동자 301명과 싱가포르 화이트칼라 노동자 303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무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비교했다. 연구 결과 직장 내 무례는 번아웃과 소진을 높이고, 이는 다시 직무 불만족과 업무에서 물러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다만 같은 무례를 경험하더라도 국가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 영향을 받아들이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직장 내 배제’가 학술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2023년 국제학술지 ‘행동과학’에 호남대학교 경영학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는 국내 직장인 403명을 최종 분석해 직장 내 배제와 직무 스트레스, 번아웃의 관계를 살폈다. 연구진은 같은 대상자를 한 달 간격으로 두 차례 조사했다. 1차 조사에서는 직장 내 배제와 질투에 대한 인식을, 2차 조사에서는 직무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측정했다. 그 결과 직장 내 배제를 경험한다고 인식한 직원일수록 직무 스트레스와 번아웃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료에게 질투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정도가 이 관계를 일부 매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동이 단순히 ‘기분 나쁜 직장생활’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욕설이나 폭언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행위의 반복성, 업무상 관계, 행위의 정도와 맥락, 그 결과 발생한 정신적 고통과 근무환경 악화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실제로 국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서도 따돌림이나 배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형이다. 지난해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1만6000건을 넘어섰으며, 관련 사례에는 따돌림과 업무 배제 등도 포함됐다.

그렇다면 직장 내 조용한 괴롭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영국 CIPD는 “직장 내 무례를 줄이려면 문제가 심각해진 뒤 처벌하는 것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관리자가 초기 갈등 신호에 신속하게 개입하며 직원들이 문제를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제로 캐나다와 미국 연구진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동료 간 존중과 예의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직장 내 무례와 소진을 줄이고 직무만족도와 관리자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결국 필요한 것은 한숨과 무시가 반복되기 전에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있고, 관리자가 개입할 수 있는 조직의 장치다. 말없이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분위기 역시 관리해야 할 ‘업무환경’이라는 인식부터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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