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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18, 2026

77년 전에도 국회에 빨갱이가 있다고 한…[금자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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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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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국회프락치 사건이라고 들어봤어?”

“모르겠는데요.”

“그렇구나. 하긴 내가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는데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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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그게 혹시 국회에 빨갱이가 있다고 다 잡아간 사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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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잔을 앞에 놓고 후배 J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름에도 나는 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J는 아이스 바닐라빈 라떼를 시켰다. 늦은 점심을 먹고 들른 조용한 카페였다. 시곗바늘이 오후 1시반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2층의 탁 트인 창문으로는 명동 세종호텔이 한눈에 보였다.

퇴계로를 사이에 두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입주한 남산스퀘어빌딩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이 카페는 덜 붐벼서 좋았다. 10개월 전부터 단골로 삼은 곳이다. 반대편 큰길 뒤편 먹자골목에 있는 카페들은 점심 직후 북새통이었다. 외국인 손님까지 몰려드는 터라, 2시가 넘어도 자리 잡기가 어렵고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언제부턴가 취재원과의 인터뷰 약속은 늘 이곳 2층으로 잡았다. 인터뷰 사진을 촬영할 때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를 끼칠 염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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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간첩과 내통했다고 족친 사건이지.”

“어디선가 본 거 같아요. 부산에서 있었던 일 같은데요. 헌병들이 국회의원들이 탄 버스 막 가로막고…. 아닌가? 그때 반올림해서 개헌한 거 아닌가요?”

“그건 아닌데. 많이 아네.”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요. 언제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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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빠르게 포털 검색창을 두드렸다.

“국회프락치 사건은 1949년이네요. 다른 거네.”

J는 진실화해위원회를 나와 함께 출입한다. 수습기자 공채로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눈치가 빨라 선배들의 귀염을 받고 있었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어떤 설명이든 전광석화처럼 이해한다고 극찬해준 취재원도 있었다.

J가 말한 ‘부산에서 있었던 일’은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이다. ‘반올림해서 개헌한 거 아닌가’라고 물은 일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이다. 둘 다 개헌과 관계됐다. 앞의 것은 직선제를 위한 발췌개헌, 뒤의 것은 1회로 제한된 대통령 중임 조항을 없앤 개헌이었다.

부산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통근버스에 탄 국회의원 40여명을 헌병대로 연행했다. 국회를 아예 해산하려 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무산됐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이렇게 국회를 압박한 끝에 직선제 개헌을 이뤘다. 사사오입 개헌은 국회와의 짬짜미 속에서 이뤄졌다. 이승만이 원하는 개헌안에 찬성한 의원이 135명으로 정족수인 135.333보다 모자라자 0.333명을 버리는 수로 해석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원내 다수가 이승만 편인 자유당이었다. 이 개헌으로 이승만은 대통령을 세 번 넘게 할 수 있는 날개를 폈다. 두 사건보다 더 앞서는 일이 국회프락치 사건이었다.

“해방 직후 역사는 어떻게 공부했어? 나 같은 세대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으로 세미나를 했는데.“

“저희는 어릴 때 역사를 만화책으로 배웠어요. 글보다 만화가 훨씬 오래 남아요. ‘초한지’, ‘삼국지’,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만화 한국사 이야기’. 요즘도 ‘칼부림’이나 ‘오사카 환상선’ 같은 역사 웹툰을 좋아해요. 9권 세트로 된 이이화 선생님 만화책은 선사시대에서 광복까지 나오는데, 초등학생 필독서였어요. 거기서 국회프락치 사건은 못 본 것 같아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익히 알지만, 그분 이름으로 만화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낯설다. J는 1999년생이다. 나와는 아득한 차이가 난다. 국회프락치 사건으로 만나게 된 강금자 여사와 J는 61살 차이다. 손주뻘이다. J는 만화와 더불어 영화와 드라마로 현대사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야인시대’, ‘화려한 휴가’, ‘서울의 봄’, ‘제5화국’ 등등의 제목이 줄줄이 나왔다.

“해방 직후 사건 중엔 무엇이 기억이 남아?”

“아무래도 반민특위 아닐까요? 영화 ‘암살’ 기억나세요? 일본 경찰의 스파이로 나온 이정재가 반민특위에 기소돼서 재판을 받잖아요.”

“‘암살’ 기억나지. 이정재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죽였어.”

“반민특위 사건이랑 국회 프락치 사건이랑은 관련 없죠?”

“관련 있지. 아주 깊지.”

“(핸드폰 검색을 해보며)아, 그렇네요.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이승만이 반공 이념을 내세워 권력을 강화하는데, 그 첫 단추가 국회프락치 사건이라고 하네요. 반민특위 해체랑 시기가 겹쳐요.”

“바로 저기가 말이야….”

나는 일어서서 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카페 2층 창문 너머 오른편으로 1949년 당시 경찰이 “국회의원들에게 접근한 공작원들의 숙소였다”고 발표한 아지트 자리가 보였다. 옛날 주소는 충무로2가 55인데, 지금은 번지수가 바뀌어 53-9다. 그 앞에는 ‘이마트24’라는 편의점이 있다. 명동 세종호텔과는 다른 각도에서 큰길을 사이에 두고 있다. 국회프락치 사건과 관련해 언급돼온 역사의 현장 바로 옆에서 후배와 그 사건을 화제로 올렸던 셈이다.

세상의 문명은 77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지만, 정치권력이 생명을 이어가는 방식은 변한 게 없다. 그때에도 국회에 간첩이 있다고 했고, 불과 1년6개월여 전에도 국회에 빨갱이가 있다고 했다. 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돼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고 했다. 괴물이라니.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했다. 약탈, 파렴치, 반국가세력이라니. J는 당시 취준생이었다.

국회프락치 사건은 역사책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만화책이나 영화·드라마로 주목받은 작품도 없다. 이제 그 사건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온 여사님에게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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