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북미 정상회담…반전 돌파구 내려면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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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다른 의제들도 있지만 우리에겐 단연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대화 제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화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우리 정보당국에서도 50:50, 그리고 지난주 중국에서 만난 현지 전문가들은 50% 이상의 확률로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기자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기대치는 크게 내려갔다. 현재로서는 개최 여부가 오리무중이다.
사실 김 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재회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 트럼프와의 개인적 유대를 돈독히 하는 동시에 김 위원장과 북한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영향력 있는 정상 국가를 지향하는 북한으로서는 김 위원장이 미국·중국·러시아라는 세계열강의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국가적 자부심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북-미 관계 밀착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상대적으로 배제하는 전략적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 지도자와 국가의 평판 향상과 전략적 계산이라는 측면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다분히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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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정은의 북한은 명분 못지않게 실리를 강조한다. 아직도 ‘하노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북한으로서는 외교적 쇼를 넘어선 실질적 결과를 바라고 있다. 북한 외무성 처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복기해 보자. 2019년 2월28일 심야,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긴급 소집해 회담 결렬 사유를 소상히 밝혔다. 북한이 영변 핵 생산 시설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고 동시에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영구 중단하는 조건으로 2016~2017년 사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11개 결의안 중 민생과 관련된 5개 사항(철광석, 석탄, 수산물, 섬유류 수출, 원유 및 정제유 수입 제한, 대북 투자 및 합작 사업)에 대해 제재 완화를 요구했으나 미국이 ‘영변 핵시설’ 외에 추가 조치를 압박하면서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회담 결렬의 책임을 물어 리용호 외무상은 해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성공이 담보되지 않으면 북이 대화와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인다. 여기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두 가지 제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나는 선 비핵화를 고집하기보다 핵·미사일 능력의 중단에서 시작해 축소와 최종 폐기로 나아가자는 단계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추가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 기술 개발 중단과 대북 제재 일부를 맞바꿔 조건 없는 대화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이는 북의 하노이 제안과 유사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미국이 수락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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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영변 플러스알파’(강선이나 구성 고농축 우라늄 시설 중단)를 제시하고 미국은 조선과의 적대시 정책 종식과 관계 정상화, 한-미 연합 군사 연습 및 훈련 중단, 금융 제재와 같은 미국의 독자 제재 해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보장, 그리고 대북 해외 투자의 활성화 등 파격적 제안으로 화답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조건이라면 평양도 북-미 대화에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절차적인 문제도 해소돼야 한다.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추진하려면 특사를 임명하고 막후 접촉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구체적 인센티브를 담은 정확한 시그널을 보냈어야 했다. 그런 것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덕담과 같은 임기응변식 소음만 나오니 북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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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과 미국에서는 아직도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대화와 협상의 입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제재 완화를 협상 카드로 써서는 안 되며 제재와 강압이 있어야만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미 연합 군사 연습과 훈련도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담론 분위기가 대세라면 김 위원장이 대화에 나올 이유가 없다. 설령 나와서 합의한다 해도 국내 정치적 이유에서 합의 이행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 패러다임의 전폭적 전환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분명 공은 평양에 있다. 그러나 선택에 확신을 주기 위해 명분 못지않게 북이 거부 못 할 실리라는 카드를 과감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시간은 있다. 반전의 돌파구 마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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