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철길 이으면 유라시아 한달음…탄소무역 시대, 동해선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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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위기 시대, 이동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에서 철도와 공공교통 중심으로 사람과 화물의 이동을 전환하는 ‘모달 시프트’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전국철도노동조합과 ‘한겨레교육’이 함께 ‘지구를위한이동전환(모달시프트) 기록단’을 만들어, 전국의 교통망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공동 기획물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6회에 걸쳐 전국의 철도 도로 현장 탐구를 통해 화물과 여객, 지역과 도시, 철도 노동과 안전의 현실을 살펴보고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교통체계와 철도의 역할을 모색한다.
한반도는 대륙의 동쪽 끝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한국,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이 이곳에 맞닿아 있다.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서 이들을 육상으로 연결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 철도다. 유라ㅎ시아철도, 즉 대륙철도는 오랫동안 남북 화해와 통일의 상징으로 이야기돼 왔다. 그러나 탄소가 무역의 조건이 되고 공급망 안정성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대륙철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러시아·북한이 유라시아철도의 핵심 구간인 두만강 하구에서 움직이고 있다. 북한 두만강역과 강 건너 러시아 하산역 바로 서쪽이 중국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6년 5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함께 두만강 출해 문제에 대한 3자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9월7일에는 북한 나선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양국 최초의 자동차 전용 교량도 개통됐다.
이곳에는 이미 나진항~두만강역~하산역을 잇는 약 54㎞의 철도가 있다. 북한의 1435㎜ 표준궤와 러시아의 1520㎜ 광궤를 함께 사용하는 복합궤로, 러시아 화물열차가 나진항까지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기존 철도에 도로까지 더해지면서 두만강 하구는 북·중·러 교통망의 결절점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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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진-강릉 이으면…유라시아철도로 이어진다
하산역부터는 러시아 극동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이어진다. 열차는 모스크바에 도달하고, 다시 유럽 철도망을 따라 베를린과 파리, 영국해협 해저터널을 거쳐 런던까지 철도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운행 경로와 환적 노선에 따라 거리는 달라지지만 부산에서 출발해 한반도와 시베리아를 거쳐 서유럽까지 연결하면 1만㎞를 훌쩍 넘는 유라시아 철도축이 된다.

이 거대한 철도축에서 남측의 마지막 단절구간이 강릉~제진 동해북부선이다. 국가철도공단의 2026년 현행 사업자료에 따르면 강릉에서 양양과 속초를 거쳐 고성 제진까지 110.9㎞를 연결하는 단선철도로, 사업기간은 2021년부터 2029년까지다. 2022년 착공 이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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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진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철도가 연결된다면 철길은 북한 동해안을 따라 두만강역까지 올라간다. 여기서 국경을 넘어 러시아 하산역에 도착하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만난다. 부산에서 한반도를 종단해 러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륙철도의 물리적 골격이 갖춰지는 것이다.
물론 실제 열차 운행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철도 현대화, 국경 통관, 궤간 차이, 국제정세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동해북부선의 완성은 단순히 강릉과 고성을 잇는 국내 철도 하나의 개통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철도공단도 이 사업을 남측 단절구간을 연결해 향후 남북철도와 유라시아 대륙철도망을 연결하는 사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해북부선은 한반도가 대륙철도로 나아가기 위해 복원해야 할 남측의 마지막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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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철도의 동쪽 핵심 축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동해선이다. 2025년 1월 포항~삼척 166.3㎞ 구간이 개통하면서 부산 부전역에서 강릉역까지 363.8㎞가 철도로 이어졌다. 철도는 동해안 주민과 관광객의 이동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동해선 개통, 대륙 나아갈 남쪽 기반
지난 8월 동해선을 따라 경주와 울진, 강릉을 찾았다. 경주역에서는 캐리어를 끌고 내리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빠져나왔다. 다국어 무인발권기 앞에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에서 온 오리안(21)씨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를 찾았고, 이탈리아인 다이애나(25)씨 가족은 서울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북쪽 울진에서는 철도가 가져온 변화가 더 선명했다. 2025년 문을 연 울진역 앞에는 관광택시가 자리 잡았고, 관광택시 기사들은 철도 개통 이후 관광객의 이동이 편리해지고 장거리 이동시간도 줄었다고 말했다. 더 북쪽 강릉역 대합실도 여행객들로 붐볐다.
지금 동해선은 부산과 경주, 울진, 강릉을 잇는 국내 철도다. 그러나 이 철도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지금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동해선은 지역의 이동을 바꾸는 철도이면서 장차 두만강과 러시아 하산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철도로 이어질 남쪽 기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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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와 국제정세가 개선돼 북한 철도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대륙철도는 한국 경제와 물류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연결되면 해운과 항공 사이에 철도라는 새로운 물류 선택지가 생긴다. 해운보다 빠르고 항공보다 저렴한 운송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공급망을 다양화할 수 있다.
부산항과 동해선은 해운과 대륙철도를 연결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수출입 물류망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유럽의 내륙시장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철도는 국제 물류에서도 대안으로 각광
철도는 장거리 국제화물에서 해운보다 빠른 운송이 필요하면서도 항공보다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하는 화물의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부품, 전기·전자제품, 정밀기계처럼 운송시간의 가치가 큰 화물이 대표적이다. 중국과 유럽 사이에서는 이미 대규모 화물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2026년 5월 누적 운행 13만 회를 넘어섰다. 2026년 7월 중국 측 공식자료 기준으로 중국 129개 도시와 유럽 26개국 236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으며, 아시아 11개국 100개 이상의 도시와도 연결돼 있다.

국내에서 이런 철도 물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동남권이다. 포항과 부산, 울산에는 철강과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이 밀집해 있고 항만이 자리한다. 이 지역을 따라 동해선 철도가 북쪽으로 이어진다.
포항 영일만항에는 2019년 포항역과 항만을 잇는 11.3㎞의 인입철도가 개통했고, 2020년 화물열차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철도화물 물동량은 2023년 6784TEU(티이유·길이 20피트 크기의 컨테이너)에서 2024년 2만1058TEU로 1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포항에서 만난 박홍주(66)씨는 철도화물이 늘어나면 도로의 대형 화물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이상원(72)씨도 “포항은 철강을 비롯해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이 많다”며 철도 물류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철도화물은 도로에 비해 수송분담률이 낮다.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인 전현우 전문가는 경쟁력을 높이려면 산업단지 안까지 철도를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장과 철도가 떨어져 있으면 다시 트럭 운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컨테이너를 최대한 산업단지 안에 갖다 놔야 한다”며 산업단지 조성·개량 단계부터 철도 연결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확정한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따르면 수송부문 배출량은 2018년 9880만톤에서 2024년 9750만톤으로 거의 줄지 않았다. 하지만 2035년에는 3680만~3930만톤까지 줄여야 한다. 2024년보다 약 60%를 감축해야 하는 것이다.
도로에 집중된 수송을 철도로 옮기는 ‘모달 시프트’가 필요한 이유다. 철도는 장거리·대량 화물에서 도로보다 탄소배출량이 적다. 한국교통연구원 분석에서는 100만톤 화물을 1㎞ 옮길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도로화물 214톤, 철도화물 7톤으로 나타났다. 철도화물이 도로의 약 3.3% 수준이다.
탄소규제 확대될수록 철도 가치 상승 중
유럽의 환경정책은 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원료와 사용, 재활용 등 전 과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4년 발효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은 제품의 내구성과 재활용성뿐 아니라 제품군에 따라 탄소발자국과 환경발자국 등을 정보·성능 요건으로 설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디지털제품여권(DPP)은 이러한 제품별 정보를 전자적으로 연결해 제공하는 제도로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 흐름은 국제물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 공급망 전체의 탄소배출을 관리하게 될수록 무엇으로 운송했는지도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택소노미’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철도 여객·화물운송을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경제활동으로 분류하고 있다.
유럽이 제품의 탄소발자국과 전 생애주기 환경정보를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기업은 생산공장뿐 아니라 조달과 운송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탄소를 줄이는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라시아 철도는 과거의 ‘대륙 연결’이라는 상징을 넘어설 수 있다. 탄소규제가 확대될수록 철도는 해운과 항공을 보완하는 저탄소 국제수송수단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유라시아 철도의 완성은 한반도를 대륙과 연결하는 문제이자 탄소무역 시대의 새로운 물류축을 확보하는 문제다.
장거리 철도운송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실험은 이미 진행됐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18년부터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해 자동차부품과 정밀기기 등을 유럽까지 운송했다. 2020년 실증에서는 운송비가 해운의 평균 약 2.3배였지만 운송기간은 대체로 절반 수준이었다.

한국도 2024년 오봉역에서 부산항과 중국 연운항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컨테이너를 보내는 국제복합운송을 네 차례 시험했다. 알마티까지 약 6044㎞를 19일, 타슈켄트까지 약 7010㎞를 22일에 운송했다. 남북철도가 끊어진 지금도 한국 화물이 해운과 중국 철도를 거쳐 유라시아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륙철도의 의미는 이제 철길을 연결하는 데만 있지 않다. 생산공정에서 당장 줄이기 어려운 탄소를 물류에서도 줄이고, 유라시아 철도물류망과 접속해 한국의 무역 공간을 대륙으로 넓히는 방법으로서 대륙철도는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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