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풍산개’ 새끼들의 비극…왜 유기견센터에 있나 [정진아의 다르지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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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아 | 동물자유연대 이슈행동팀장
해랑이와 금강이의 원래 이름은 봄이와 여름이었다. 밝고 생기 넘치는 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이들을 둘러싼 세상도 다정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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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가 이곳으로 왔다. 이후 곰이는 두 차례에 걸쳐 13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평화의 상징’을 어미로 둔 강아지들은 환대의 대상이었고, 자견을 분양받은 지자체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이름을 공모하며 소란스럽게 이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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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청와대에서 지내고 있던 마루와 곰이 사이에서 태어난 봄, 여름이는 고성으로 분양돼 해랑이와 금강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 평화를 전한다는 거창한 수식에 비해 건물 앞 돌 바닥에 지은 견사는 초라하고 쓸쓸했다. 날마다 들고나는 방문객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개들의 모습에 우려와 비판이 이어졌다.

올여름 둘의 안부를 살피러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그러나 견사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행방을 아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시설 근무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춰 찾아간 곳은 인적 드문 고성군 유기동물보호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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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그곳에서 해랑이와 금강이를 마주하자 당혹감이 앞섰다. 보호소 공터의 펜스 안에서 그 둘은 낯선 방문객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한때 이들을 특별한 존재로 소개하던 명판은 견사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더는 명판이 필요하지 않은 곳. 방치된 명판은 이들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둘이 고성에 온 지도 5년이 됐다.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40년 남짓한 시간이라고 하니 어느덧 나와 비슷한 또래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나이에 이르도록 이렇다 할 행복한 기억도, 즐거운 경험도 없이 누군가의 자유로운 삶을 바라보기만 하며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보호소 공터에서 흘려보내는 하루하루가 이렇게나 아까울 수가 없었다.
이것은 두 마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6일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풍산개들의 관리 실태를 지적했다. 대통령기록관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곰이와 송강이는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돼 우치동물원에서 대여 형태로 관리되지만, 각지로 흩어진 자견들은 현황 보고 의무조차 없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름이와 가을이는 순천만국가정원 어린이동물원에 전시됐다. 해랑이와 금강이가 펜스 너머 방문객을 바라보던 것처럼 그 둘은 전시장 유리벽 너머로 사람들을 지켜봤다. 자료에 따르면 아름이는 새끼 두 마리를 낳았고, 그중 한 마리는 세상을 떠났다. 자견들의 현황조차 흐릿한 상황에서 그다음 세대의 삶은 더욱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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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해, 선물 같은 따뜻한 단어들 속에서 출산이 거듭됐지만, 그렇게 태어날 동물의 일생까지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필요할 땐 조형물처럼 전시하다가 민원이 이어지자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기는 관리 방식에서 동물 하나하나의 삶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 간 친선이나 외교처럼 인간에게만 유의미한 목적을 위해 동물을 동원하는 방식은 이제 거둬야 할 낡은 관행이다. 이미 그렇게 존재하게 된 동물에게는 단순히 살아있게만 두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삶을 보장해야 한다. 개에게 그것은 당연히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다. 국가 차원에서 적합한 입양처를 찾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도 적절한 돌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봄이와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시절, 세상이 온통 따뜻하기만 했던 그때처럼 해랑이와 금강이의 밝은 날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란다. 예전 같은 소란한 환대는 필요치 않다. 그저 언제든 반겨줄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그 안에서 느끼는 온기 어린 안도감. 꼭 그만큼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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