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커밍아웃의 날’…대법 판결에도 여전히 취약한 성소수자 현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천막을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매년 10월11일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지지하는 ‘커밍아웃의 날’이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일부 진전된 판결에도 여전히 가정·일터에서 권리를 제한받거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4년 7월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은 한국 사회 내 성소수자의 제도적 보호 측면에서 진일보한 판결로 평가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성 간 사실혼 관계에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 동성 동반자를 배제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는 판단이었다.
다만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이 성소수자 배우자의 법적 지위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는 있었다. 울산·부산·대구의 동성 커플 3쌍은 지방자치단체가 혼인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4월 관할 법원에 불복 신청을 냈다. 동성이라는 이유로 혼인 신고를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법원은 지난 7~8월 동성 간 결합이 헌법상 보호되는 혼인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신청을 모두 각하했다.
한국에서 동성 동반자는 가족 관계 측면의 법적 권한을 제한받고 있다. 동성 동반자에게 유언 등으로 재산을 남길 수 있지만 배우자로서 법정상속권은 없다.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때 가족이 참여하는 연명의료 결정 절차에도 관여할 수 없다.
성소수자들은 일터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담인 현실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다움이 최근 5년 이내 임금노동 경험이 있는 만 19세 이상 성소수자 2639명을 조사해 지난 4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정체성을 숨긴 채 일한다는 응답은 71%였다. 직업 선택 때 정체성 관련 요인을 고려했다는 응답은 66%, 부적절한 발언이나 농담을 들은 경험은 74%였다. 해당 연구책임자는 국회 토론회에서 “정체성을 숨기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정체성을 밝히면 직장 내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도 있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 등이 지난 3월 학술지 <산업관계연구>에 발표한 공동 논문 ‘직장에서 커밍아웃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한국 성소수자 노동자의 경험 분석’에 따르면, 한 연구 참여자는 “팀장들이 저를 평가할 때 (성소수자 정체성) 그런 걸 반영해서 점수를 낮게 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사 성향에 따라 업무 태도 등을 판단하는 정성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공식 기구를 통해 차별을 인정받더라도 현실에서 시정이 이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고용상 차별을 조사 대상으로 두고 있지만, 인권위의 시정·피해 회복 권고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차별 행위에 대한 구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차별금지법 입법이 추진돼왔다. 고용·교육·보건의료서비스 등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위 권고를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차별금지법은 2006년 인권위의 제정 권고 이후 20년째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손솔 진보당 의원과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각각 지난 1월과 2월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논의 진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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