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회용품 규제 완화’ 뒤 컵 사용량 다시 증가…지난해 10억8900만개
환경운동연합과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이 2024년 6월10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정부가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과 자발적 협약을 맺어왔지만 실제 감축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협약을 체결한 업체들의 일회용컵 사용량은 2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일회용품 감축 협약에 참여한 24개 카페·패스트푸드 업체의 지난해 일회용컵 사용량은 10억8900만개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 7억6000만개보다 약 43.3% 늘어난 수치다.
정부는 2002년부터 패스트푸드, 커피, 베이커리 업체 등과 일회용컵 보증금제, 다회용컵 우선 사용, 빨대 감량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발적 협약을 맺어왔다. 지난 7월 기준 정부와 일회용품 감축 협약을 맺은 곳은 23개 브랜드와 개인카페 150곳이다.
정부와의 협약에도 업체들의 일회용컵 사용량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해마다 협약을 맺은 업체 수가 달라 사용량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집계 업체 수가 동일한 2020~2022년, 2024~2025년에도 일회용컵 사용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2020년 9억400만개였던 일회용컵 사용량은 2021년 9억9300만개, 2022년 10억3600만개로 늘었다. 2025년 사용량도 전년보다 약 1.6% 증가했다.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와 유예, 철회를 반복하는 등 오락가락한 정책 행보를 보일 때마다 일회용품 사용량도 증감을 거듭했다. 정부가 2018년 8월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컵 단속을 강화하자 이듬해 일회용컵 사용량은 전년 대비 3300만개(3.8%)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규제 유예를 거쳐 2022년 규제가 재시행되자 이듬해인 2023년 사용량은 전년보다 9600만개(9.3%) 감소했다.
반면 정부가 규제를 철회한 이후 일회용컵 사용량이 다시 급증했다. 정부는 2023년 11월 종이컵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플라스틱 빨대 등에 대한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2023년 9억4000만개까지 줄었던 일회용컵 사용량은 2024년 10억7200만개로 14.0% 치솟은 뒤 지난해 10억8900만개를 달성해 2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회용품 규제와 단속이 전반적으로 느슨해지면서 종이컵뿐 아니라 여전히 규제 대상인 플라스틱컵과 나무젓가락, 일회용 접시 등의 사용도 전반적으로 확산했다.
자발적 협약에 따른 목표 설정이 미흡하고, 이행 결과에 대한 점검이나 제도 개선이 부족했던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2013년 협약에서는 ‘2020년까지 22% 감량’ 등의 목표가 있었지만, 2018년부터 맺은 협약에서는 정량적 감축 목표가 실종됐다. 2002년 정부가 민간업체들과 처음 감축 협약을 맺은 뒤 24년간 이행 결과를 점검해 공개한 것은 2003년, 2017년, 2018년, 2019년 등 단 4차례에 그쳤다.
한정희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협약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측정할 수 있는 목표 없이 협약을 반복하는 것이 문제”라며 “이행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유럽처럼 필요한 부분은 규제로 이어가는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왕진 의원은 “24년간 반복된 목표 없는 자발적 협약과 작동하지 않는 규제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구체적인 감축 목표량과 단계별 시한, 철저한 현장 단속 계획이 명시된 일회용품 규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흔들림 없이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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