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비운의 조각가를 넘어서…“감정이입으로 거장의 실체 조명”

광고
“지난 3년 동안 조각가 권진규의 삶을 영화로 풀어내면서 그가 근대 세계 속 개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중요하게 의식하며 작업했음을 느꼈어요. 근대 세계는 사회 속 개인의 몸과 마음에 압박하듯 자극과 영향을 줍니다. 개인은 이에 대해 내면의 것을 바깥 세계로 표현하려는 속성을 표출하지요. 권진규야말로 자신의 조각을 통해 이 두가지 특성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습니다. ”
한국 근현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의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권진규:예술가의 일생’을 만든 민환기 감독(58)은 최근 고인의 작품이 상설전시된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런 소회를 전했다. 그는 “권진규란 거장을 전혀 몰랐던 내가 권진규를 알고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였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6일 개막하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작품이 초청돼 첫 상영을 앞두고 있다. 그는 “내 모든 역량을 쏟아 만들었지만, 작가의 생을 제대로 알리는 것인지는 여전히 두려움이 앞선다”고도 했다.
권진규가 1948~59년 일본 무사시노예술대학 유학 시절 사귄 연인 오기 도모코(1931~2014) 역의 배우가 그를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는 인물”이라고 독백하며 시작하는 영화는 재연과 아카이브 사진·영상, 증언 등이 얽히며 조각가의 내면을 휩쌌던 감정과 영감, 생각의 흐름을 추적해간다. 화자로 등장하는 도모코 외에 여동생 권경숙과 조카 허경회, 허명회 등의 친지들의 증언, 한일 조각사 연구자와 화가의 해설, 일본 유학시절과 60년대 이후 국내 활동, 개인전과 돈암동 작업실의 모습, 말년 모델이 된 여성 제자들의 모습과 인터뷰 등이 거장의 작품세계를 재구성한다. 무엇보다도 권진규를 고국 미술계의 무관심에 지쳐 삶을 접은 비운의 예술가라는 식의 상투적인 서사를 넘으려 한 의도가 도드라져 보인다.
광고
“조각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부터 살폈습니다. 그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을 보면 드러나는데, 조각은 면들의 조합을 덩어리로 만들어서 표현하는 건데 그 면들이 각각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공부할수록 이해하게 되요. 그러면서 서구 조각거장들로 시야를 넓히니까 권진규 조각이 이해되기 시작하더라고요. ”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근대 조각의 비조로 꼽히는 19~20세기 프랑스 거장 로댕과 부르델의 조형 방법론에 대한 탐구였다. “단순하게 보자면 부르델은 내면에 있는 것들을 바깥에 표현하려고 하는 조각가이고, 로댕은 외부의 영향, 흔적을 표현하려는 거장이었는데, 권진규는 그 두 개를 하나의 조각 안에 해보려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게 실제 근대 개인의 모습에 가까운 게 아닐까. 제가 이번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얘기하려 했던 것이었죠. ”
광고
광고
지난 2023년 3월 제작사 명필름과 권진규 기증전을 했던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기념사업회가 협약을 맺으면서 제작이 착수됐을 무렵 그는 자료를 건네받고는 자기 내면을 털어놓지 않았던 권진규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이 극도의 난관이 될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는 “극영화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을 연인 도모코의 독백이 차지하고 그의 젊은 시절과 말년 사진들이 등장하면서 감정이입하게 하는 얼개를 지향했다”고 했다.
“감정이입을 강조한 건 말년에 그가 되풀이하며 내놓은 여성 형상 작품들의 창작 배경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압박 속에 감정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르게 에둘러 표출해야했던 당대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작가는 얼굴 정면과 옆면의 정서적 느낌이 판이한 여성상과 자소상을 통해 교감의 메시지를 표현했다고 봅니다. 말년의 건칠한 예수상도 그런 맥락에서 자신은 작품을 위해 사라지겠다는 실존의 문제를 걸고 자식 같은 작품들에 보내는 일종의 희생 메시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광고
결국 그의 작업과 삶에서 궁극적으로 근대적 인간의 존재를 묻게 된다는 것이 3년 동안 완성한 이 영화 작업의 귀결이었다고 민 감독은 말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