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멀어지고 도로는 주차장…‘자동차 중심’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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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교통이었다. 정부는 대중교통 중심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초기 광역교통대책을 찾아보면 도로 확충에만 무게가 실렸다. 영덕~양재 고속화도로 신설과 국지도 23·57호선 확장 등 도로 사업이 주요 대책으로 마련됐고, 정자~신사 구간 신분당선을 제외하면 버스전용차로(BRT) 확보와 같이 도로망 대중교통 대책이 전부다. 핵심 철도망인 신분당선조차 늑장 개통됐다. 아파트와 테크노밸리 입주가 끝난 2011년에야 운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요 예측도 주택 2만9천가구와 계획인구 8만9천명을 중심으로 이뤄져, 1800여 기업과 7만8천명에 달하는 테크노밸리 통근 수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뒤늦게 추진된 내부 철도망도 장기간 표류했다. 지하철 8호선 연장은 예비타당성조사 탈락과 철회를 반복했고, 성남도시철도(판교·모란 트램) 역시 규제와 경제성에 막혀 2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두 사업 모두 재추진에 나서고 있지만, 착공과 개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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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판교역과 성남역을 중심으로 지티엑스-에이(GTX-A) 노선과 월곶~판교선이 지나는 광역철도망 사업이 추진되며 교통체증 개선에 대한 기대가 모인다. 하지만 내부 교통망은 여전히 부실하다. 출퇴근길 버스는 늘 만차인데다 배차 간격도 불규칙하다. 서울 은평구에서 판교의 한 연구소로 출퇴근하는 김아무개씨는 “힘겹게 도착한 판교역에서부터 20분 넘게 걸어가거나 또다시 막히는 버스를 타기가 애매하다”며 “결국 새벽 일찍 자가용을 끌고 나온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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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교통을 풀 핵심 열쇠로 ‘마지막 1마일’ 내부 수송망 혁신이 꼽히는 이유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부원장은 “대중교통 종착지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승용차 이용률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철도역과 업무지구, 주택단지를 잇는 보행망과 내부 대중교통망을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헐려나간 도심 철도, 외곽에 유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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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밖 사정은 더 암담하다. 일부 지방 도시는 기존 도심 생활철도마저 외곽으로 이전하거나 폐지했다. 포항·경주·울산을 잇던 옛 동해남부선이 대표적이다. 2021년 기존 도심 철도 노선이 폐선되면서 구포항역과 구경주역, 불국사역·모화역·호계역 등 생활권 가까이에 있던 역들이 사라졌다. 폐지된 역사는 공터로 방치되거나 교통 기능을 상실했다.

구포항역터는 중심지 기능을 잃은 채 대형 교차로로 전락했다. 지나는 사람은 없고 차량만이 빠르게 오간다. 초록색 펜스가 쳐진 폐역 부지 안에는 고물상과 비둘기떼만이 남아있다. 인근 ‘포항중앙상가 실개천 거리’는 대부분 임대 문의가 붙은 공실이다.
구경주역터 상황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경주문화관 1918’으로 재단장했으나, 플랫폼에서부터 철로를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전부 흙먼지 날리는 대형 임시 공영주차장과 붕괴 위험 안내 문구만이 선명하다.
이어지는 불국사역·입실역·모화역 주민들의 불편도 크다. 약 3평 남짓한 모화역 시외버스정류장을 가득 채운 학생과 주민들은 학원이나 병원에 가기 위해 30~60분씩 기다리는 건 일상이라고 호소했다. 일정이 조금이라도 급하면 차를 끌고 가는 게 속 편하다는 하소연이 절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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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동해남부선 울산~포항 구간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최근 신설된 역들마저 외곽으로 밀려나 문제다. 호계역에서 버스로 20분 떨어진 북울산역은 도심 연계 교통이 충분하지 않아 역 주변이 택시와 대형 주차장 등 자동차 중심의 연계교통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일부 폐선 부지는 도심숲으로 재단장되기도 했다. 포항시는 폐선로 6.6㎞를 ‘포항철길숲’으로 조성해 시민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의 이동 기능을 대체할 대중교통이 부족해 인근 도로는 혼잡하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포항은 신도심과 구도심을 잇는 대중교통망이 부실한 상황”이라며 “이동을 위해서는 승용차에 의존해야 하기에 도심 내 정체가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 주차장 늘리자 도로가 주차장으로…도심 옥죄는 정체의 악순환
대중교통이 부실한 탓에 결국 승용차를 끌고 도심에 들어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겨우 목적지에 다다른 운전자 앞에는 주차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초역세권에 위치한 ‘압구정428 공영주차장’. 344대 규모에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상시 만차를 기록한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비롯해 인근 문화·상업 시설을 찾은 사람들과 자동차로 가득하다.
진입로에는 이미 백화점과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승용차 몇십대가 꼬리를 물고 차로를 점령하고 있다. 대기 차량과 통과 차량이 뒤엉키면서 주변 도로는 수시로 마비된다. 4차선 도로 중 3·4차로에 색깔 유도선을 표시해 두어도 경적과 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인근 공영·노상주차장 주변도 불법 유턴과 과속이 제대로 단속되지 않아 혼잡을 키운다. 결국 백화점 직원들이 만차 팻말을 들고 차량을 분산시키지만 대기 행렬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압구정428 공영주차장은 2001년부터 현대백화점이 위탁 운영해 오며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6년 2월부터는 강남구가 직접 운영을 맡고 있지만 현대백화점에 유익한 공공부지 시설임은 분명하다. 고객 차량뿐만 아니라 백화점 물류 트럭과 셔틀버스까지 주차장 일부를 점유하고 있으며, 백화점 측에서 문화센터 이용객 등에게 이 주차장의 무료 주차 혜택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구는 1만3968㎡에 달하는 해당 부지를 대규모 상업·문화 복합 시설로의 개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형 교통유발시설이 들어서거나 주차 공간이 늘면, 승용차 이용을 부추기는 유도수요가 발생해 주변 도로의 교통 부담만 커질 위험이 크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본부장은 “무제한적 주차장 공급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며 “승용차 수요 자체를 조절하는 총량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짚었다.

기후위기로 폭염과 도시 열섬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공부지의 활용은 더욱 중요하다. 일본 도쿄도 무사시노시는 면적 10.98㎢, 인구 약 15만명의 고밀도 도시임에도 공공용지를 주차장이 아닌 180곳가량의 공원과 녹지로 채우는 결단을 내렸다. 자동차 강국인 일본조차 도심 부지를 차량 수용보다 시민의 쾌적한 환경권에 우선 배분하는 셈이다.
즉 압구정 한복판의 대규모 구유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단순한 주차장 개발 문제가 아니다. 한정된 도시 공간을 자동차를 수용하는 데 계속 사용할 것인지, 시민의 삶과 환경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할 것인지의 문제다.
■ 도로·보행 공간의 대전환, 모달시프트
교통 문제의 해법은 도로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찾을 수 있다. 승용차를 배제하자는 말이 아니라 자가용에 의존하도록 설계된 도시 구조를 바꾸자는 취지다.
우선 도시계획과 교통계획을 처음부터 결합하는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이 필수다. 신도시 개발 후 교통난이 터지면 철도를 추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택과 업무시설을 계획할 때부터 철도와 대중교통망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 박 부원장은 “선교통·후입주를 실현하려면 예비타당성조사의 적정 기한을 준수하고 종합적으로 사업성을 판단하는 행정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광역교통개선분담금 등에만 의존하지 않는 대대적인 선투자 국비 재원도 충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모달시프트는 대중교통으로 수단을 바꾸기만 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철도와 버스뿐 아니라 자전거, 보행, 개인형 이동수단(PM)이 촘촘히 연결된 공간이 변화해야 한다. 우 본부장은 “유럽 도시들이 자전거와 보행 정책에 적극적인 이유에는 시민 건강 증진을 통한 의료 재정 절감과 골목 상권 활성화라는 입증된 투자 성과가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관련 예산 편성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전했다.
결국 모달시프트의 최종 목적지는 ‘기본 이동권’이다. 어린이와 노약자, 장애인, 자동차 비소유자를 포함해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일상의 이동에 제약받지 않는 도시. 그것이 지속가능한 교통체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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