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골프, 차라리 공개하면 어떤가 [취재파일]

지난해 이맘때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식사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골프를 하겠다고 일종의 '선언' 비슷할 걸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도 정상국가인데, 대통령도 떳떳하게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골프 라운딩 소식이 조금씩 들려온 것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상국가'라는 표현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공직자의 골프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지난해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430만 명,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전국 골프장 총 방문객 수는 4,641만 명이다. 그럼에도 아직 골프에 드는 비용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공직자의 골프에 대한 잣대가 아직 일반 시민보다 더 엄격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지위가 높고 힘이 셀수록 더욱 더 그렇다. 다만 구분할 건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고, 듣는 사람도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 원인이 수반된 심각한 인명 사고나 중대한 안보 위협 사태를 보고 받고도 대통령이 나 몰라라 골프를 쳤다면 마땅히 비난받고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게 아니라 휴일에 골프를 치는 도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났다면, 사안의 경중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일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참모가 있고, 국정상황실이 있으며 위기관리시스템이 있는데 만기친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그런데 대통령의 골프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그때그때 달랐다. 2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대비해 골프 연습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리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 대변인은 "귀를 의심할 일", "코미디"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당시 당 대표가 지금 대통령이었다. 이때의 용산 대통령실은 윤 전 대통령의 골프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같이 라운딩 하자고 했을 때, 골프를 전혀 못 치는데 응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도 결례"라면서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항변했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과거 아베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회동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골프 칠 수 있다"고 엄호하기도 했다.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국민의힘 의원도 이를 잊어버렸을 리 없다. 잘 안 될 걸 알면서 특검부터 하자는 것도 어디서 많이 본 초식이다. 요샛말로 '미러링(Mirroring)'이라고도 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 나의 적이 되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유구한 역사는 오늘도 대통령의 골프를 두고 정치에서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 편들어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는 한 신문 칼럼에서 이 대통령이 최근 대구 상가 천장 붕괴 사고 당시 골프를 쳤다는 야당 의원의 비판과 이와 관련한 여야 공방에 "노후 건물의 안전성이 논제가 되어야 할 사건이 대통령의 골프, 세월호, 현직 시장의 예지력으로, 럭비공처럼 튀어 다니며 토론장을 어지럽힌다"고 지적했다.
경호상 이유로 불가능하다지만, 차라리 대통령이 골프 일정을 사후에라도 공개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달에 1~2번 정도, 사회 각계 인사들과 골프를 치며 스트레스도 풀고 국정에 대한 의견도 들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은 포춘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의 90%가 골프를 치며, 임원 3분의 2 이상이 골프가 비즈니스 거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야당 중진 의원들을 만나 함께 골프를 쳤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야 정치권에선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르며 SNS를 하는 것보다 야당 의원들과 골프를 치며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어렵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청와대 내부에 트럼프 골프회동 대비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알고 보면 다 얽히고설킨 일이라지만, 이제는 대통령의 골프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합의된 기준점을 형성해나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굳이 트럼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더불어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과 자승자박도 이 참에 좀 줄이기로 여야가 약속하는 것도, 한국 정치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