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경주'에 남은 수중 타임캡슐…마도서 발견된 배 4척은

2009년 마도 1호선 시작으로 고려·조선시대 선박 수중 발굴 조사
화물 '꼬리표' 목간 기록 눈길…참기름병·꿀단지는 보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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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산하 태안수중유산박물관 전시실에 마도 1호선 발견 당시 남아있던 선체를 토대로 재현한 선박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올해 5월 촬영한 것. 202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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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물결과 파도가 격렬하게 감아 돌고, 물살이 빠르게 솟구쳐 오르는 것이 기괴하여 형언하기가 어렵다."(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중 마도 부분)
서해의 바닷길은 예부터 오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곡물을 비롯한 지방의 다양한 물자를 수도로 옮기려면 반드시 서해를 지나야 했다.
특히 지금의 충남 태안 일대는 가장 험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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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펴낸 '태안 마도해역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크고 작은 암초가 분포하고, 물살이 거센 안흥량 일대는 지나가기 어려운 물길이라는 뜻에서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리기도 했다.
위험을 뚫고 수많은 배가 오갔으나, 악천후로 침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흔적은 태안 근흥면 대섬 일대에서 발견된 '태안선'을 비롯해 마도 해역에서 찾은 고려·조선시대 선박 6척(마도 1∼6호로 명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1980년대 어민들이 수중 유물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알려진 마도 해역은 2000년대 들어 조사가 본격화하며 한국 수중고고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다음은 '바닷속 경주'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 조사한 고선박을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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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펴낸 '태안 마도 1호선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18세기 '해동지도' 속 안흥진 모습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마도서 찾은 첫 난파선…전라도 '먹거리' 싣고 운반하다 침몰
2009년 발견된 마도 1호선은 전라남도 나주, 해남, 장흥 등에서 거둔 곡물 등을 싣고 수도인 개경으로 향하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곡물 운반선이다.
벼·쌀·콩·메밀 등 각종 곡물류와 젓갈, 청자, 도기 등 940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남아있는 선체의 길이가 10.8m, 너비는 약 3.7m이며 원래 길이는 16.5m에 달하는 대형 선박으로 추정된다. 곡물 51t(톤)을 실을 수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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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펴낸 '태안 마도 1호선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선내에서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과 죽찰(竹札·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대나무 조각)이 발견돼 당시 화물이 오간 상황도 엿볼 수 있다.
무신 정권기 최충헌(1149∼1219) 휘하에 있던 인물과 관련해 "대장군 김순영 댁에 벼 6섬을 올린다"는 내용도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고려 희종(재위 1204∼1211) 대인 1208년 봄 출항했다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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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은 보물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꿀·참기름 담아 수도 개경으로…마도 2호선에 남은 흔적
마도 해역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2호선은 지금의 전북 고창 일대에서 거둬들인 곡물 등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난파된 고려시대 곡물 운반선이다.
2010년 5월부터 10월까지 수중 발굴 조사에 나서 각종 곡식류, 청자 매병, 목간과 죽찰, 동물 뼈, 대나무 젓가락 등 970여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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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은 보물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려한 조각 솜씨가 돋보이는 청자 2점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보물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과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은 12세기 말∼13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맑고 투명한 빛을 띠며 고려청자의 다양한 장식과 기형을 연구할 자료로 꼽힌다.
매병에는 '준'(樽)이라고 적힌 죽찰이 달려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매병을 '준'으로 부르고, 꿀이나 참기름 등 귀한 식재료를 담는 그릇으로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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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펴낸 '태안 마도해역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고위 관직자' 집 향한 전복·홍합…바닷속에 남은 마도 3호
마도 1·2호와 함께 발견된 고선박으로 2011년 발굴 조사했다.
지금의 여수 일대와 주변에서 거둔 곡물, 전복, 홍합 등을 당시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로 운반하던 곡물 운반선으로 추정된다.
출수된 목간 35점을 판독한 결과 1265∼1268년 사이 난파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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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펴낸 '태안 마도 3호선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대 최고 권력자인 김준(∼1268) 등 고위 관직자들이 화물을 받는 사람으로 기록돼 있으며 중방(重房), 삼별초(三別抄) 등 관청이 수취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생활 용기로 쓴 청동 용기와 숟가락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됐다. 조약돌 앞뒤에 차(車)·포(包)·졸(卒) 등이 적힌 장기알도 있어 선원들의 놀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마도 3호선은 선박 구조가 거의 완전한 형태에 가까울 정도로 남아있다. 유물 발굴은 모두 마쳤으나, 손상 없이 통째로 인양하기 위해 바닷속에 남겨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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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펴낸 '태안 마도 해역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분청사기가 밝힌 역사…처음 확인된 조선시대 배 '마도 4호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조선시대 선박으로 가치가 크다.
2014년 고선박의 존재를 찾은 뒤, 이듬해 본격적인 수중 발굴 조사를 진행해 다량의 곡물, 분청사기, 목제 유물 등 310여 점의 유물을 찾아냈다.
선박의 연대와 성격을 밝히는 데는 분청사기가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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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염 처리장에 보관 중인 마도 4호선 선체 모습. 2025.11.10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발견된 분청사기 155점 가운데 3점에서 조선시대 관청인 내섬시(內贍寺)를 뜻하는 '내섬'이란 글자가 확인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내섬시는 궁궐에 바치는 토산물, 관리에게 주는 술과 안주 등을 담당하던 곳이다.
목간 다수에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라고 적혀 있어 1417∼1425년 나주에서 출항해 당시 수도인 한양의 광흥창에 세곡과 공물을 운반하던 조운선으로 판단된다.
선체는 왼편 일부를 제외하면 외형이 잘 보존된 상태이며, 내부 조사를 완료한 뒤 바닷속에 뒀다가 지난해 인양 작업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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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펴낸 '태안 마도 해역 수중 발굴 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4일 09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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