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 부쩍 늘어난 ‘중국 황제 옷’…수천년 전통? 2003년 처음 등장했다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경복궁에서 중국 황제 복장을 착용한 남성(왼쪽)과 경복궁에서 한푸를 입고 있는 여성. SNS 갈무리
경복궁을 걷다 보면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로 낯선 옷차림의 중국인 관광객을 마주칠 때가 있다. 길게 늘어진 소매와 넓은 옷자락, 허리에 두른 띠, 화려한 머리장식까지 마치 중국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최근에는 중국 황제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남성이 경복궁 광화문 월대를 걷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이들이 입은 옷은 중국에서 ‘한푸(漢服)’라고 부른다. 최근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에서 한푸를 입고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 중국인 인플루언서들의 모습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중국 SNS인 웨이보와 샤오홍슈 등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면서다.
도대체 ‘한푸’가 무엇이길래 중국인들은 한국의 궁궐에서도 입고 다니는 걸까. 한푸(漢服)는 한자로 ‘한(漢)의 옷’이라는 뜻이다. 특정 왕조인 한나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을 뜻한다.
중국의 전통복식은 시대에 따라 형태와 이름이 달랐다. 한나라의 복식, 당나라의 복식, 송나라의 복식, 명나라의 복식이 서로 같지 않았다. 심의(深衣), 유군(襦裙), 포(袍), 원령포(圓領袍), 마면군(馬面裙) 등 구체적인 복식 형태마다 명칭도 달랐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푸’라는 말이 현대 중국인들의 일상에서 지금처럼 널리 사용된 역사가 길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학계에서는 현대 한푸 운동의 출발점을 대체로 2002~2003년 무렵으로 본다. 2020년 중국 구이저우대학 양나 연구자는 ‘한푸’라는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시점을 2002년으로 설명했고, 21세기 초 민간에서 시작된 한푸 부흥운동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중국 인터넷에서는 ‘한족에게는 민족 복식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계기는 2001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였다. 당시 각국 정상들이 중국풍의 옷을 맞춰 입으면서 ‘탕좡(唐裝)’이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복식처럼 세계에 알려졌다.
하지만 한푸 운동을 주장하던 이들은 탕좡을 한족의 전통복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적으로 만들어진 중국풍 의상에 청나라 만주족 복식의 요소 등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는 “그렇다면 한족의 전통복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중국의 한푸 관련 연구에서도 당시 ‘한족의 전통복식’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현대 한푸 운동의 전신이 됐다고 설명한다.
그 논쟁을 인터넷 밖으로 끌고 나온 사람이 왕러톈(王乐天)이었다. 2003년 11월 22일 당시 34세였던 전력 노동자 왕러톈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허난성 정저우의 한 상업 거리를 걸었다. 상의에는 곡거심의(曲裾深衣) 형태의 옷을 입고 겉에는 외투를 걸쳤다. 심의(深衣)는 상의와 하의를 이어 만든 긴 옷이고, 여기에 옷자락이 몸을 감싸며 여러 겹으로 돌아 나오는 형태가 ‘곡거(曲裾)’다. 그가 입은 옷은 당시 유행하던 사극 <대한천자(大汉天子)> 속 고대 복식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길거리에서는 그를 일본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국 매체는 당시 그의 옷차림을 두고 “일본인이 기모노를 입고 왔다”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고 소개한다. 며칠 뒤 이 모습이 싱가포르 중국어 신문 ‘연합조보’에 보도됐고, 중국 인터넷으로 사진과 이야기가 퍼지면서 왕러톈은 현대 한푸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중국 매체들은 11월 22일을 ‘한푸 출행일’로 기념하기도 한다.
한푸 운동을 분석한 중국 연구에서는 이를 ‘한족 문화 부흥’으로 보는 시각과 함께 인터넷 시대의 ‘한족 민족주의 운동’으로 규정하는 연구도 있다. 실제 한푸 운동의 초기 인터넷 공동체에서는 한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되찾고 전통문화를 부흥시키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중국 연구자 장샤오는 한푸 운동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적 사회운동으로 분석했고, 다른 연구자들도 한푸가 한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적 자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푸는 폭발적으로 대중화됐다. 고궁과 옛 성곽, 역사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푸를 입고 사진을 찍는 문화가 중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됐다. 중국 매체 펑파이신문(澎湃新闻)은 한푸가 2003년 무렵 인터넷에서 소수의 젊은이가 모여 전통복식의 형태와 역사적 근거를 논의하면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동호인 집단은 대학 동아리와 지역 모임으로 이어졌고, 2010년대 들어 웨이보와 비리비리, 더우인 등 SNS와 사극·게임 콘텐츠를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처음에는 한족 전통복식을 되살리자는 문화적 성격이 강했던 한푸가 점차 사진과 영상, 패션 상품으로 소비되면서 지금의 대중적인 청년 문화로 커진 것이다.
문제는 한푸운동이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역사 공간으로 들어올 때다. 중국에서는 한복뿐 아니라 김치 등 한국 고유의 문화에 대해서도 중국 문화의 일부라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조선족 전통복식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을 때도 한복을 중국 소수민족 문화로 편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한복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복장 문제가 아닌 이유다.
이런 인식은 SNS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경복궁에서 한푸를 입은 중국 인플루언서를 옹호하는 일부 중국 SNS 게시물에는 오히려 “한국이 중국 복식을 가져갔다” “한복이 한푸에서 비롯됐다” 등의 주장이 등장했다. 한푸를 중국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복식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나라의 전통문화까지 중국의 영향권 안에 두려는 주장이 함께 유통되고 있다는 점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경복궁이라는 조선 왕조의 법궁에서 한푸를 입고 촬영한 영상이 이런 인식과 결합할 경우, 단순한 관광객의 옷차림을 넘어 문화적 오인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의 한복과 중국의 한푸는 엄연히 다른 의상인데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 의상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특히 중국 인플루언서들이 한푸를 입고 경복궁을 활보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제작해 SNS에 올리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인플루언서들은 타국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존중할 줄 아는 ‘글로벌 매너’부터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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