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봐요 우덕마을! 주민의 일상이 역사가 되는 곳 [만리재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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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걷다가 담장 너머로 잘 익은 무화과 하나를 서리해서 베어 문다. 집 지키는 누렁이한테도 가을 햇살만큼 쨍쨍한 단맛을 보여주고 완전범죄를 꿈꾼다. 사실 들켜도 괜찮다. 이길순 할머니는 무화과를 다 따먹어버렸다고 이실직고하는 이웃에게 웃으며 “잘했어~ 무화과 엄청 달고 맛있어~”라고 말한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우덕마을. 인심 넉넉한 이곳엔 이 마을만의 기록관이 있다. 지난 8월 정식 개관한 우덕기록문화관이다. 베틀, 카세트 플레이어, 쌍안경, 벽돌만 한 전화기 등 우덕마을 주민의 손때 묻은 물건들은 물론 1960년대부터 쌓인 마을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각종 회의록, 가정 건강기록부, 새마을운동 때 사진 등이다. 눈에 띄는 건 지금은 ‘전통 혼례’라고 부르는 모습의 결혼사진 여러 장이다. 지금도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의 옛 결혼사진이 이 마을의 흘러간 시간을 고스란히 펼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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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마을회관에서 만난 서순자 할머니는 시집오면서 갖고 온 상자와 “다듬빵냉이”도 기록관에 기증했다. 결혼사진도 다 갖다 줬다는 그는 “좋은 마음으로 줬으니 아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죽으면 애들은 구찮으니까 다 없애버리잖아. 근데 기록관은 길길이 남아 있잖아”라며 미소 지었다. 대단한 유물은 없어도 마을의 오래된 이야기를 담은 이곳은 마을 주민의 삶을 주인공으로 삼는 특별한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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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의 옛 물건들 사이로 은은한 커피 냄새가 난다. 이곳은 면사무소 직원, 명절에 오가는 친척들이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유현자 할머니는 “6월에 나 팔순 때 자식, 손주, 동생들 다 와서 15명이 기록관에서 커피도 마셔서 좋았지”라며 “추석에도 자식, 손주들 다 올 거야”라고 말했다.

기록관은 마을 토박이 김형섭 마을 개발 위원장과 7년 전 귀촌한 박후진 사무장 두 명이 주축이 돼 세워졌다. 방치된 옛 경로당 건물을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발견한 1960년대 물건들이 이 마을 공동체를 증명하는 민간 기록물이라는 생각에 시작했다. 박 사무장은 “주민들이 볼 수 있게 기록물을 나열했더니 어르신들이 옛날 기억을 끄집어내며 재밌어하셨다”며 “주민이 즐겁게 사는 모습에 이끌려서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둥지마을 조성사업으로 마을에 왔던 청년 인턴들이 어르신의 일상을 담은 마을 홍보 콘텐츠를 SNS에 올린 것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박 사무장은 “마을 전입 인구도 중요하지만, 마을과 관계를 맺으며 오가는 인구가 많아지는 것도 마을을 활기차게 한다”고 말했다.

월급 주는 사람도 없지만 두 사람은 계속해서 크고 작은 마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공모 사업에 지원해 얻은 사업비로 기록관을 옛 경로당 건물에서 옛 농어촌공사 사무실로 옮겼고, 마을 도로를 넓히면서 담장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방범용 폐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하기도 했다. 외지인이 우덕마을과 관계 맺을 수 있는 활동을 계속하며 마을의 활기를 북돋는다. 10월 말에 예정된 부안 기록 여행 ‘시고르 런트립’ 참가자들에게 게스트 하우스를 내어주는 식이다. 최종 목표는 마을에 요양돌봄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동력은 마을에 대한 애착이다. 김 위원장은 “마을 기록은 우리 일상의 흔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며 “나중에 내가 없더라도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는 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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