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만 밀어도 휘청, “언젠간 사달 날 끼라”···도로·철길 옆 방치된 재선충 고사목에 사고 우려
경북 포항 북구 청하면 필화리에서 지난 21일 만난 김차연씨(86)가 도로변에 서 있는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을 가리키고 있다. 김현수 기자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 일대 산림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가 넓게 퍼져 있다. 녹색연합 제공
“마을 사람들이 죽은 소나무 좀 베어 달라고 해도 이래 그대로 냅뒀다 아입니까. 이러다 언젠간 사달이 날 끼라.”
경북 포항 북구 청하면 필화리에서 지난 21일 만난 김차연씨(86)가 도로 옆 소나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잎이 누렇게 변한 나무에는 붉은색 라커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나무라는 표시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따라 비슷한 고사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쓰러지면 도로 전체를 덮을 만큼 컸다. 나무 아래로는 전선 10여 가닥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김씨는 “7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온 산의 소나무가 다 죽어 있는 것은 처음 본다”며 “마을에도 죽은 소나무가 쓰러져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녹색연합과 함께 둘러본 포항~영덕고속도로와 동해선 철도 주변도 비슷했다. 도로와 철도 인근 산비탈에는 말라 죽은 소나무가 곳곳에 서 있었고 일부는 손으로 살짝만 밀어도 크게 휘청였다. 바로 아래엔 기차와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 일대 산림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가 넓게 퍼져 있다. 녹색연합 제공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이런 집단 고사지는 강풍에 나무가 부러져 도로나 시설을 덮치는 위험이 크다”며 “폭우 때는 고사목이 뿌리째 뽑히면서 산사태나 토석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죽은 나무가 방치되면서 도로와 철도, 민가 등 생활공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는 방제뿐 아니라 생활권 주변의 고사목부터 찾아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연합은 포항·경주·울산·밀양 등 소나무재선충 피해가 심한 지역을 조사한 결과 도로와 철도·민가 주변 곳곳에서 고사목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10개월간 드론 등을 활용해 고사목 위험지역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인 결과다.
이들에 따르면, 포항~영덕고속도로 청하터널 주변에는 도로보다 높은 산비탈에 고사목이 모여 있다. 해안과 가까워 강풍 영향을 받기 쉬운 곳이다. 인근 월현산에서는 2024년부터 재선충병 피해가 본격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철도 주변도 마찬가지다. 울산 태기리 경부고속철도 구간에는 선로보다 5~7m 높은 비탈에 고사목이 서 있고, 칠곡 율리 딴뫼산 일대에서도 선로 주변에 죽은 소나무가 몰려 있다. 나무가 쓰러지면 선로뿐 아니라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선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게 녹색연합의 설명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 남산쉼터 인근 산비탈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고사목이 넓게 퍼져 있다. 녹색연합은 강풍이나 태풍 때 고사목이 도로로 쓰러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연합 제공
민가와 맞닿은 곳도 있다. 경주 감포읍 오류리에서는 주택 3채 바로 뒤 급경사면에 고사목이 밀집해있다. 포항 두원리 해안초소에서는 해병대 1사단이 위험목 제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재선충병 피해도 다시 확산하고 있다. 산림청이 지난 5월 기준으로 집계한 감염목은 177만2985그루로 1년 전보다 약 28만7000그루 늘었다. 발생 지역도 같은 기간 154개 시·군·구에서 166개로 확대됐다. 산림청은 현재 상황을 ‘3차 대발생’ 단계로 보고 국가방제단을 구성해 대응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1988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다. 2007년까지 1차 대발생을 겪었고 2014년 2차 대발생 때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다 2022년부터 다시 확산세로 돌아섰다. 재선충을 지닌 매개충이 나무 사이를 이동하며 병을 옮기며, 한번 감염되면 사실상 치료가 어려워 ‘소나무 불치병’으로 불린다.
녹색연합은 감염목 숫자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말고 나무 높이와 굵기, 부패 정도, 기울어진 방향과 도로·철도·주택까지의 거리 등을 함께 조사해 위험도가 높은 고사목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 국가철도공단 등 시설 관리기관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 위원은 “재선충병 대응은 이제 감염 확산을 막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며 “고사목과 위험목을 찾아 제거하고 국민에게 직접적인 위험이 되는 지역부터 재난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칠곡군 율리 딴뫼산 경부고속철도 인근 산비탈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고사목들이 밀집해 있다. 바로 옆 선로로 고속열차가 지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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