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도 트럼프 비판···“ICC 제재, 전례 없고 용납 못 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학자이자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인 나바네템 필레이가 202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뉘른베르크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조인 나바네템(나비) 필레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재를 “전례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필레이의 수상 발표 직후 ICC 제재를 발표했다.
필레이는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센터 행사에 영상으로 참석해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를 비롯한 국제법원의 존립을 둘러싸고 긴장과 불안이 매우 크다”며 “한 국가가 판사들이 내린 사법적 결정만을 이유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례 없고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날 노벨평화상 수상 발표 직후 ICC를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불법적 기구”로 규정하고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 내 ICC 자산을 동결하고 모든 금융 서비스와 기술에 대한 접근을 6개월 안에 중단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ICC는 미국의 조치가 국제법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영국, 캐나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등은 우려를 나타내거나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제재로 ICC의 금융 거래와 재판 업무가 차질을 빚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필레이의 수상과 미국의 제재 발표가 맞물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수상 결과에 대한 불만도 다시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주 시러큐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상이 돌아갔다”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내가 한국과 북한, 일본과 북한, 중국과 대만 사이의 전쟁도 막고 있다”며 “8개의 전쟁을 끝냈으니 노벨상 8개는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은 ICC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군의 행위를 조사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반발해 왔다. 필레이가 2021~2025년 이끈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관련 독립조사위원회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인정한 것도 트럼프 행정부의 비판 대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사를 “허위 조사”라고 주장하며 필레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적대자”라고 공격했다.
필레이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아래서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에 맞서고 국제법과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4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타밀족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한 활동가와 정치범들을 변호하며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1973년에는 넬슨 만델라 등 수감 정치범들이 변호사를 접견하고 법률 서적을 반입할 수 있도록 하는 판결을 끌어냈다. 1986년에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상담소를 설립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뒤인 1995년에는 남아공 고등법원 최초의 흑인 여성 판사가 됐다.
국제사법 분야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 이후 설치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판사와 소장을 지낸 그는 1998년 강간과 성폭력도 집단학살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한 판결에 참여했다. 이는 전쟁 중 벌어지는 성폭력을 국제법상 처벌해야 할 중대 범죄로 인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는 “수 세기 동안 분쟁 속 여성들의 고통은 무시되거나 묵살돼 왔다”며 해당 판결을 “내 경력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ICC 판사를 지냈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맡았다. 인권최고대표 재임 시절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인권 의제로 제기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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