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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5, 2026

이 대통령 고향 마을에도 민간인 학살…“국가 명령에 이주했지만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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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경북 안동시 교도소연구소 사무실에서 금순교(왼쪽)씨와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이 삼계·도촌·신남 지역 민간인 희생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지난 23일 경북 안동시 교도소연구소 사무실에서 금순교(왼쪽)씨와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이 삼계·도촌·신남 지역 민간인 희생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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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는데 경찰인지 군인인지가 와서 할아버지를 데리고 나가셨다고 해요. 우리 아버지도 평생을 쉬쉬하다가 겨우 설득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3일 경북 안동시 교도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금순교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 금병창은 1949년 9월 안동 예안면 집에서 가족들과 아침을 먹다가 군경의 손에 끌려나갔다고 한다. 곧이어 총소리가 들렸고, 겁에 질린 가족들은 모두 몸을 숨겼다. 한참이 지난 뒤 총소리가 멎었고, 가족들은 금병창을 찾아 나섰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풀숲에서 금병창은 총에 맞은 채 숨져 있었다. 주검을 가족들과 주민들이 수습해 묻어주었다고 한다.

금씨가 할아버지의 억울한 희생 소식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전 안동교도소장)이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자신의 큰할아버지 소식을 찾다가 예안면 삼계·도촌·신남리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어릴 적 함께 살던 마을 주민들을 수소문하며 당시 행방불명됐던 어른들의 소식을 파악하려고 했다. 금씨는 “할아버지가 붙잡혀 갔으니까 어른들도 무슨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서 평생 이야기를 안 했던 것 같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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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도촌·신남리는 영양·봉화와 맞닿은 안동 예안면 북동쪽 산간 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전 영양 일월산 일대는 빨치산의 주요 근거지였다. 정부는 1949년 가을 토벌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에게 마을을 비우고 예안면 소재지로 가라며 소개령을 내렸다.

금 소장은 “이 마을에는 학교도 없었고 대부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었다. 밤에는 식량을 약탈하러 온 빨치산에 시달리고, 낮에는 빨치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군경에 시달렸다”며 “정부가 소개령을 내려서 강제로 예안 읍내로 나가 살았는데, 낮에 마을에 가보면 집도 식량도 모두 불타고 없었다고 한다. 읍내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많았는데, 삼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군경의 표적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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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최근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직접 수소문해 찾아낸 유족 7명 등과 함께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소개령으로 마을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진 데다, 1970년대 안동댐 건설로 예안면 읍내도 대부분 수몰돼 당시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내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2010년 1기 진실화해위 조사 당시 안동 지역 곳곳에 진실규명 결정이 이루어졌지만 삼계·도촌·신남 지역은 조사 소식조차 몰랐다고 한다.

금 소장은 “삼계·도촌·신남의 민간인 학살은 국가의 명령으로 빨치산이 없는 안전한 곳이라 믿고 강제 이주했지만 오히려 국가에 희생당한 가장 억울한 사례다. 피해자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며 “1기 진실화해위 때 알았더라면 많은 분이 살아계셨을 텐데, 늦게 알게 되어 아쉽지만 이제는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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