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조선영과 대구의 조선영 [정문정의 대화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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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정 | 작가·‘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저자
인천의 한 도서관에서 강의를 했다. 토요일에 진행하는 강의는 보통 오후에 시작하기 마련인데 그날은 이례적으로 오전 10시30분부터 진행되었다. 신청을 했지만 오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높아 좌석이 띄엄띄엄 채워져 있었다. 빈자리보다 신경 쓰였던 건 무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시계였다. 어느새 작은 바늘이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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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을 낸 게 헛되지 않아서 늦지 않게 마무리를 하고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사인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고 사회자가 안내해주었다. 몇몇이 내 쪽으로 줄을 섰다. 나는 처음 이름을 물어볼 때, 마지막에 책을 돌려줄 때 얼굴을 보고 잠시라도 눈을 마주친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꼭 그렇게 한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나름의 의식이다. 희고 동그란 인상의 중년 여성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발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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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입니다.”
“조선영? 제 절친 이름이랑 같으시네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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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예전에 ‘선영아 사랑해’라는 광고가 있었는데 기억하실 수도 있겠네요.”
조선영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안다고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태어난 여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던 이름이 선영이라 가능했던 카피였다. ‘선영이가 가르쳐준 봉골레 스파게티, 대박 날까요?’라는 상호를 가진 파스타 가게에 선영이와 함께 갔던 추억도 있다. 나는 조선영님에게, 라고 쓰고 옆에다 하트 모양을 추가했다. 책을 돌려주면서 다시 눈을 마주치고 친구에게 하듯이 손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사인을 모두 마치고 도서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로비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정오의 햇살이 뜨거워서 눈이 부셨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왔던 길을 거꾸로 떠올려보았다. 계양역으로 가서 공항철도로 갈아탄 다음에…. 그때 뒤에서 “작가님”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인사했던 조선영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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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과 작가님 친구분 이름이 같다고 해서 용기를 냈어요. 지금 점심시간인데 시장하지 않으세요? 바로 앞에 식당이 있는데 같이 식사 어떠실까요? 저도 어차피 먹고 가려던 참이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요. 괜찮으시면 제가 대접해드리고 싶어요.”
인천의 조선영씨와 마주 앉아 막국수를 먹고 돌아와서 대구에 사는 조선영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너 덕에 인천의 조선영씨랑 밥을 먹었어.”
흥미로워하던 대구의 조선영은 자기도 작은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감사한 마음을 오래 품고 있었던 고등학교 은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마지막에 그가 “앞으론 자주 전화 드릴게요”라고 하자 “자주는 말고 가끔씩”이라고 선생님이 화답했다 해서 함께 웃었다.
나도 그들처럼 들이대 본 적 있다. 대학 때의 일이다. 졸업하면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 같은 곳에서 일하면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자가 하는 일은 인턴을 해봐서 낯설지 않았지만 편집자가 하는 일은 막연했다.
출판사 취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파주에 가 볼 결심을 했다. 관심 있던 출판사 중 몇 곳을 추려 견학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거절의 회신이 계속되었고 마지막에 딱 한 곳에서 수락해주었는데 바로 ‘열린책들’이었다. 그 건물은 유독 유리창이 넓고 컸다. 적막하게 느껴졌던 사무실 안의 차분한 공기도 떠오른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체크해둔 교정지를 무더기로 쌓아놓은 편집자들의 책상 사이를 지나 유리문을 열고 홍지웅 대표님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수준의 질문들이었는데 대표님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헤어질 때 우리에게 신간도 한권씩 선물해 주었다. 책이 빳빳하고 묵직하고 아름다웠다.
이후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 대표님과 우리를 안내해준 편집자님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었을지 짐작을 하고도 남게 된 후부터였다. 전까지 나는 메일을 먼저 보낸 쪽의 용기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다.
최근 백온유의 청소년 소설 ‘냠냠’을 읽었다. 분식집 딸인 채원은 같은 반 서우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먹을 걸 자꾸만 챙겨주게 된다. 서우는 그때마다 냠냠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 서우가 그간 받아갔던 도시락통을 채원에게 돌려준다. 그 안에는 서우가 직접 키운 대파와 방울토마토, 땅콩이 들어있었다. 채원은 멈칫하다가 곧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이렇게 귀한 걸 준다고 다 받아도 되나, 고민하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받을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서우 역시 그동안 나를 위해 주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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