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앱스타인의 그림자, ‘침묵의 카르텔’ 겨눈 두 여자의 분노…‘퓨리어스’
<퓨리어스>에서 캐서린(롤라 페티크루)이 주사기를 들고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범죄 스릴러에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나기란 아직도 꽤 어려운 일입니다. 범죄 피해자로는 그렇게 자주 등장하건만, 여성 경찰 혹은 요원이 유능하게 그려지는 일은 <시그널>(2016)의 차수현(김혜수), <비밀의 숲>(2017)의 한여진(배두나) 등 몇 작품을 제외하면 잘 떠오르지가 않네요.
디즈니플러스에서 지난달 27일부터 공개되고 있는 미국 시리즈 <퓨리어스>는 다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극을 이끄는 보기 드문 범죄물입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여성 연쇄살인범을 여성 FBI 요원이 추적합니다. <킬링 이브>가 떠오른다고요? 결이 다릅니다. <킬링 이브>의 영국 정보기관 수사관 이브(산드라 오)는 ‘천재’ 암살자 빌라넬(조디 코머)을 쫓다가, 그에게 집착하게 되죠. 둘의 얽히고설키는 감정선이 <킬링 이브>의 중요한 뼈대였다면, <퓨리어스>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이죠.
<퓨리어스> 포스터. 디즈니플러스 제공
캐서린(롤라 페티크루)은 천진하게 웃으며 남자들을 유혹합니다. 그리고는 주사기에 든 약물로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전직 경찰로 최근 FBI 요원이 된 앨리스(에미 로섬)가 그가 떠난 한 현장을 찾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약물 오남용 사고로 오인하기 쉬운 현장에서, 앨리스는 자신이 과거 맡았던 사건과 이번 살인 사건의 양상이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앨리스는 직감으로 두 사건을 연결하지만, 상사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습니다. 경찰 출신 신참이라는 것도, 앨리스가 경찰 조직을 떠나기 전 오래 사귄 동료 경찰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론화했다는 것도 평판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정작 앨리스는 피해자인데도 말이죠.
<퓨리어스>에서 앨리스 역을 맡은 에미 로섬. 디즈니플러스 제공
앨리스는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고참 FBI 요원 노라(퀸시 타일러 번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범죄자(캐서린)의 신원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나 그가 청소년기에 억류되어 강제로 성 노동을 하게 된 착취 피해자로, 보복으로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 수 있다는 추론을 하게 되면서입니다. ‘조그마한 여자애가 범인이라고?’라는 말이 나오기 십상인 마초적인 조직을 설득하려면, 더 물증이 필요했죠.
‘그렇게 노라와 앨리스는 드림팀이 되어 순조롭게 수사에 착수합니다…’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참 요원의 열의에 장단을 맞춰주기에 노라는 이미 지쳐 있습니다. 조직은 권력형 성범죄를 은폐하려 듭니다. 동료가 성매매나 가정·데이트 폭력을 저질렀다고 하면, 남성 요원들은 왜인지 그를 감쌀 구석을 찾으며 오히려 문제 삼는 이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노라는 “정말 화가 난다”면서도 “무엇을 하든 진짜 잘못한 사람은 잡히지 않는다”고 앨리스에게 조언합니다. 노라와 앨리스는 미디어가 그려내 온 전형적인 ‘여성 FBI 요원’이 아닙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유능하기에 이들은 더 현실에 있을 법하게 느껴집니다.
<퓨리어스>의 고참 FBI 요원 노라(퀸시 타일러 번스타인). 유튜브 갈무리
앨리스가 쫓는 것은 살인범 ‘캐서린’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목적은 같은 곳을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린 여자 아이들을 착취하는 구조 꼭대기에 누가 있는지를 밝혀내고자 한다는 데서요. 제작진은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차진 편집으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영화 <블랙위도우>(1987)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시리즈에서는 세계 유력인사들에게 미성년자 성매매를 알선한 성범죄자 제프리 앱스타인 사건이 짙게 연상됩니다. 영국 가디언은 “<퓨리어스>를 통해 우리는 어쩌면 ‘앱스타인 스릴러’라는 새로운 하위 장르의 탄생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평했습니다. ‘나는 결정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한 남성에게 캐서린은 묻습니다. “다 알고도 아무 짓 안 하는 사람들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하죠?”
15일 기준 8부작 중 5화까지 공개된 <퓨리어스>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매주 월요일에 한 화씩 공개됩니다. 이 기사에 담은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뿐, 예상치 못한 전개와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평점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토마토 지수) 98%와 시청자 지수(팝콘 지수) 87%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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