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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22, 2026

‘적색 공포’, 미국 정치판서 퇴장하나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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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5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메리카비즈니스포럼에서 연설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에 대해 “민주당은 이 나라 최대 도시 시장에 공산주의자를 앉혔다”며 “미국을 공산주의 쿠바, 사회주의 베네수엘라로 만들려 작정했다”고 이념 공세를 펼쳤다. 마이애미/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5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메리카비즈니스포럼에서 연설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에 대해 “민주당은 이 나라 최대 도시 시장에 공산주의자를 앉혔다”며 “미국을 공산주의 쿠바, 사회주의 베네수엘라로 만들려 작정했다”고 이념 공세를 펼쳤다. 마이애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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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올해 미국에서는 중간선거를 치른다. 대통령 선거 사이에 치르는 중간선거에서는 하원 전체, 상원 3분의 1, 50개 주 가운데 36곳의 주지사를 뽑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간선거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평가 성격이 강해 야당 의석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기 대통령 때 치르는 중간선거에서는 야당이 크게 약진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이번에도 야당인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을 차지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정치 이야기다. 내 눈에 띄는 건 언어적 현상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사회주의자’라는 말의 사용, 그에 대한 반응이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는 사회주의가 주류가 된 적이 없지만 사회주의 이념에 기댄 정치 활동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19세기 소규모 공동체 실험, 20세기 초 노동운동, 1960년대 여러 사회운동 모두 사회주의 영향을 받았다.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 사회에서도 사회주의 이념은 평등과 공동체에 대한 동경을 담아내며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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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역사 선상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억압도 그만큼 거셌다. 기득권층이 사회주의에 위협을 느낀 건 당연해 보이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그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기득권층은 일반 시민들이 ‘물들지’ 않도록 사회주의를 ‘반미국적’ 위험 이념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자를 타자화해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이 대표적 사례다. 사회적 위기나 불안이 닥칠 때면 기득권층은 이른바 ‘적색 공포’를 부추겨 정치적 결속을 호소했다.

미국은 물가 상승, 이란 전쟁,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데 트럼프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치에 뛰어든 뒤로 내내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전략을 즐겨 써왔던 트럼프는 이번엔 적색 공포로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 처음은 아니지만, 올해 들어 민주당을 언급할 때마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부쩍 쏟아내고 있다. 그전까지 타자화의 주된 표적은 이민자, 특히 중남미와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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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느닷없이 적색 공포를 꺼내든 걸까? 원인은 2016년 이후 민주당 안에서 부상한 진보 진영에서 찾을 수 있다. 그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며 예상보다 많은 지지를 얻었다. 지지층은 20~30대 젊은 세대가 중심이었다. 그 무렵 정치 활동을 시작해 샌더스처럼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정치인이 늘었다. 지난해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가 대표적이다. 올해는 이런 후보들이 민주당 경선에서 계속 승리했다. 트럼프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약점으로 여기고, 이들을 ‘사회주의자’로 줄여 공격한다. 이들이 그 말을 쓰지 않았다면 적색 공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후보 확정 뒤 선거운동이 본격화한 9월부터 묘하게 달라졌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강세를 이어 가자 트럼프의 적색 공포 공세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말 바꾸기에 능한 트럼프가 자신이 즐겨 써온 적색 공포 효과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인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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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넘게 단골 정치 전략의 하나였던 적색 공포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걸까? 트럼프는 미소 냉전이 시작될 무렵 태어나 냉전이 끝난 1991년에 이미 45살이었다. 즉, 적색 공포로 짙게 물든 냉전 이데올로기가 몸에 밴 세대다.

현재 미국 인구의 44%가 1990년 이후 출생자다. 30대 이하는 냉전을 겪지 않아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는 말에 별다른 자극을 받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양당의 기성세대가 낡은 틀로 논쟁하며 변화를 막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기존 틀 밖의 새로운 정치를 강하게 갈망하는 게 아닐까. 트럼프가 꺼내 든 적색 공포는 어쩌면 미국 역사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전략이 과연 사라질까? 아무리 봐도 섣불리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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