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워 일어섰다 영업정지”···‘춤 금지’ 팻말 걸린 부산 인디 성지의 눈물
지난 22일 부산 남구 오방가르드에서 인디 가수 키타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현희기자
“쾌적하고 안전한 공간 이용을 위해 춤추는 행위는 제한됩니다. NO DANCE.”
지난 22일, 부산 남구의 인디 공연장 ‘오방가르드’의 곳곳에는 ‘춤 금지’ 팻말이 붙었다.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된 이곳에서 관객들이 서서 공연을 관람한 것이 ‘춤을 춘 것’이라며 단속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인디 가수 키타·웬스데이오프·감귤서리단의 공연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흥이 오른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공연장 관계자들이 이들을 설득해 자리에 앉히는 광경이 반복됐다.
부산 인디씬을 대표하는 공연장 오방가르드은 이날 공연을 마지막으로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휴업에 돌입했다. 이승철 대표는 “처벌을 받은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하루빨리 적법한 방식으로 라이브 공연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부산 남구 오방가르드에서 인디 가수 키타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현희기자
오방가르드 영업정지 배경엔 소규모 공연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도적 허점이 존재한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일반음식점에서의 춤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1999년 법적 다툼을 통해 일반음식점에서의 라이브 공연이 허락됐지만, 춤은 법적 허들을 넘지 못했다. 30~50석 규모의 소규모 공연을 주로 여는 인디 공연장들은 대부분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신고를 한 채 운영된다. 문제는 관객들이 서서 공연을 즐기며 팔을 흔드는 등의 행위마저도 ‘춤’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마포구·서대문구·부산 북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일반음식점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춤 허가제’ 조례를 운영 중이지만, 부산 남구엔 해당 조례가 없어 문제가 됐다.
수익 대부분이 주류 판매에서 발생하는 구조상, 주류 판매가 불가능한 공연장으로 영업 신고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식음료를 팔면서 춤이 허용되는 업종은 유흥업소가 유일하다. 하지만 유흥업소는 일반음식점 대비 2~10배 많은 세금이 부과되며, 개업 장소도 한정된다. 무엇보다 청소년 관람객들의 공연장 접근이 원천 차단된다.
지난 22일 부산 남구 오방가르드의 칵테일 바 한켠에 무대에 올랐던 가수들의 싸인씨디가놓여져있다 . 서현희기자
이 대표는 “인디 공연장에 서는 밴드들은 공연 단가와 모객 수가 적다”며 “티켓 값 대부분은 아티스트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수익은커녕 공간 유지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본질적으로 이곳에서 즐기는 콘텐츠는 유흥이 아니다. 앞으로 인디 문화를 이어나갈 청소년들의 공연 향유 권리도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방가르드는 부산 인디씬의 거점과도 같은 곳으로, 부산의 라이브 클럽들이 영업난으로 문을 닫던 2018년 이승철·정아윤 공동 대표가 부산 인디씬의 명맥을 잇기 위해 설립했다. 서울과 부산 아티스트, 해외 밴드와 국내 밴드를 매칭하는 등 기획공연을 선보이며 부산의 대표 라이브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에서 태동한 밴드 세이수미, 해서웨이, 보수동쿨러, 소음발광 등에게 오방가르드는 각별한 공간이다. “아티스트들이 오방가르드를 자신들의 기반으로 생각해줘 고맙다”고 이야기하던 이 대표는 “생각해보니 참 많은 응원을 받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2일 부산 남구 오방가르드의 벽면에 이전 공연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서현희기자
오방가르드 영업정지 소식에 아티스트와 서울의 인디 공연장 대표들은 SNS에 연대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전자음악가 키라라는 “이 사안은 우리 이제 어떡하나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저에게는 너무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일반음식점이 아니면 유흥업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 인디 음악가들은 모두 나이트 단란주점에서 공연해야 하나”라며 라이브 공연장만을 위한 제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인디 가수 단편선은 “부산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디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오방가르드의 영업 중단을 막지 못하는 문화강국 따위 존재할 수 없다. 시민들은 유흥업소와 라이브클럽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우매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날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밴드 감귤서리단의 드러머 정쏸은 “라이브 클럽은 신인 뮤지션에게 발판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금 사태는 인디씬 뿐만 아니라 음악 하는 모든 이의 새싹을 밟는 일 같다”고 했다. 4년째 오방가르드 공연장을 찾고 있다는 관객 금지현씨(46)는 “영업정지 전 마지막 공연이라 시간을 내서 왔다”며 “춤추는 자유를 제한하는 건 공산주의 국가나 할 짓”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라이브 공연장 규제 개선에 나선 바 있다. 미국 뉴욕시는 바·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춤을 추기 위해 ‘카바레 허가’를 받게 한 카바레법을 2017년 폐지했다. 면허 제도를 없애고 안전 규정을 지킨 업장은 모두 춤을 출 수 있도록 빗장을 푼 것이다. 일본도 2015년 풍속영업법을 개정해 일정 조도 이상을 유지하고, 자정 이전에 영업을 끝낼 경우 일반음식점에서도 춤을 출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2일 부산 남구 오방가르드 무대의 모습. 서현희기자
이 대표는 “법적으로 ‘춤’이 어디까지 해당되는지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만큼, 라이브 공연장을 위한 별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대가 변했잖아요. 스탠딩 공연(관객들이 서서 관람하는 형태)만 보장되면 됩니다. 안전규제, 세금 당연히 따라야죠. 사각지대·회색지대에 머물지 않고, 공연만 생각하고 떳떳하게 제 할 일 하고 싶습니다.”
두 공동대표는 문을 닫는 두 달여 간 라이브 공연장에 관한 논의를 여러 곳에서 이어나갈 계획이다. “과거 춤금지법이 제정됐을 당시에 춤이 ‘퇴폐문화’로 취급됐던 것과 달리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저희 공연장을 거쳐간 밴드들이 기관 행사에 출연하고, 각종 페스티벌에 오르고 있잖아요. 저희 공연장이 예술계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명이라고 생각해요. 부산의 밴드들이 잘 성장해서, 그들이 부산의 나아가 한국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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