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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17, 2026

잊었던 빙하의 시간…인간의 일상을 덮쳤다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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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중국 티베트 국경 지대의 계곡을 따라 급류가 몰려오자, 건설 노동자들이 대피하는 장면을 현장의 다른 노동자가 영상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국내외 언론에 이 장면이 보도되며 충격을 주었다. 비비시(BBC) 갈무리
네팔-중국 티베트 국경 지대의 계곡을 따라 급류가 몰려오자, 건설 노동자들이 대피하는 장면을 현장의 다른 노동자가 영상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국내외 언론에 이 장면이 보도되며 충격을 주었다. 비비시(BBC)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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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 성공회대 외래교수

네팔-중국 티베트 국경 지대 계곡을 따라 물 폭탄이 아래를 향해 덮치고 있다. 건설 노동자 세명이 필사적으로 카메라 방향으로 도망친다. 나는 영국 방송 비비시(BBC) 등이 보도한 현장 영상의 이 장면이 빙하 붕괴와 산사태가 일으킨 이번 네팔 대홍수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빙하는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과학자들이 의심하기 시작한 건 18세기 들어서부터다. 스위스 박물학자 요한 야코프 쇼이처가 1723년 “크레바스에 들어간 물이 얼면서 부피가 커져 빙하를 밀어낸다”라는 팽창설을 내놨고,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18세기 후반에 “녹은 물이 윤활유 구실을 해 빙하가 바닥을 따라 미끄러진다”는 활강설을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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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많은 논쟁이 있었고, 1950년대 들어서야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처럼 빙하가 ‘통째로’ 아주 조금씩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장 느린 축에 속하는 빙하는 일년에 1m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린란드 야콥스하운 빙하처럼 빠른 건 17㎞를 흐른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감각에 잡히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시간은 빙하의 것만이 아니다.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섬에 사는 세이셸코끼리거북 ‘조너선’은 1832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순조 때 이양선이 출몰할 때다. 나는 여자 친구와 별을 바라보며 안드로메다 성운을 찾으며 수작을 걸곤 했다. 저 별빛은 250만년 전에 출발한 거야. 수작의 재료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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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의 시간대를 산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기록의 발명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식 가능 시간대는 길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판단하고 결정할 때 ‘나의 죽음’이라는 감각적 시간대에 사로잡혀 있다. 비근한 예는 5년마다 이뤄지는 대통령 선거다. 단기적인 공약뿐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기후위기 대응을 저해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이런 어리석음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기술적 방법은 아주 쉽다. 석탄·가스 등 화력발전을 중단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빠른 속도로 늘리면 된다. 그러나, 국내 선거와 기후 외교 무대에서는 임시방편만 나온다. 아니면, 비행기로 구름을 만든다거나 특수한 기계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것처럼 실용적 효과가 확실치 않은 기술 발전에 도박을 건다. 우리가 죽고 난 미래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자세가 스며든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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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서로 다른 두 시간대를 중첩시킨다. 인간의 시간대를 살아온 우리는 자연의 시간대, 더 나아가 지질학적 시간대 속에 산다는 걸 목도 중이다. 과거 우리는 인간이 주인공이고 자연은 ‘움직이지 않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역사로 보았다. 그런데, 천장에서 조명이 떨어지고 바닥이 무너진다.

인도 출신 역사학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가 역사학의 전제를 무너뜨린다고 본다. 역사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인간 경험의 연속성으로 이어져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읽는 능력으로 미래를 상상한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그러지 않았는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그런데, 기후 재난은 그 연속성 바깥에 있다. 겪은 적 없는 일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차크라바르티는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가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정지한 무대에 서 있지 않다. 인간이 지구의 물리·화학·생물학적 시스템에 개입함으로써 무대는 과거보다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그전에는 감각 불가능했던 자연의 시간이 일상으로 쳐들어온다. 네팔 대홍수가 잘 보여준다. 두개의 역사와 두개의 시간대가 얽혀 있다는 것.

이제 역사는 역사학자, 사회과학자,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후학자, 생물학자의 문제가 되었다. 나는 자연사를 배우는 지구과학, 생물학 과목과 인간의 역사를 배우는 세계사, 국사 시간을 통합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전제도 바뀌어야 한다. 모든 정책 결정은 자연과 기후를 고려해야 하고 우리가 죽은 뒤에도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미래세대 그리고 다른 비인간 존재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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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세 사람은 살아남았을까. 모르겠다. 다만 그들, 아니 우리가 달아나는 것은 물이 아니라 감각하지 못한다고 믿었던 시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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