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사람들]⑭ 마약퇴치운동본부, 살릴 수 있나요?
[끊는 사람들]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을 끊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지원이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중독 당사자 가족들의 공동의존 문제, 여성 중독 당사자들이 겪는 막막한 현실 등의 문제를 전합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⑬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척 데더릭(Chuck Dederich)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약물 중독 재활 공동체를 대성공시킨 인물이다. 그는 1958년 시나논(Synanon)이라는 공동체를 세웠고, 미국 언론은 이 공동체를 ‘해변의 기적’으로 불렀다. 데더릭은 추앙받았다. 그러나 시나논은 변질됐다. 카리스마 있던 리더 데더릭은 왕처럼 군림했다. 회복 공동체의 성공 신화는 데더릭의 변호사 살인 모의라는 오명과 함께 막을 내렸다. 기시감이 들었다. 경기도 다르크(DARC·마약류 중독자 재활시설)에도 데더릭이 있었다. 회복 생태계가 새 판으로 짜이지 않는다면 데더릭은 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중독 회복 서사를 가진 유명인이 스포트라이트에 서고, 추앙을 받으며, 중독자를 살리는 사람이라는 권위 속에 서게 된다면 말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연합뉴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끊는 사람들’은 누가 살리고 있을까. 공식 답변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일 것이다. 마퇴본부는 마약류 예방, 중독자 재활과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대표 기관이다. 1992년 대한약사회 주도로 설립됐고, 2020년대 들어 마약 중독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2024년 기타공공기관에 지정됐다.
마퇴본부는 중독 당사자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조직인가. 그동안의 취재는 이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중독자들을 살리는 데 투신해 온 많은 이들이 현 시점 마퇴본부에 회의적이다. 문제는 이렇게 비관하기에는 마퇴본부가 너무 크고 중요한 책무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끊는 사람들] 14번째 글은 마퇴본부와 주요 관련 인물 이야기다.
주요 인사 비위 의혹에도 “우리끼리 덮자”는 내부논리
장면 하나.
2023년의 어느 날, 마퇴본부 회의실이다. 마퇴본부 당시 사무총장과 센터장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앉아 있다. ‘회복계 셀럽’들에게 행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잇달아 알려지던 무렵이다.
여성 내담자 여러 명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져 피소된 인천 다르크(DARC·마약류 중독자 재활시설)의 최모 센터장(⑫편 참조) 이름이 나온다. 당시 사무총장이 말한다.
“최○○씨 같은 경우는 언론에도 그렇고 회복이나 재활 성공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홍보도 된 상황인데, 자칫 이게(성비위 문제가) 불거질 경우에 우리 마퇴본부나 재활에 굉장히 피해가 크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내부적으로 단도리를 했어요. 더 이상 불거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고, 본인도 자숙하면서 잦아들게 만드는 게 좋지 이게 더 말이 커지고 하면 우리에게 절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일단 잠재운 적이 있었는데.”
사무총장은 최 센터장이 마퇴본부 이름으로 더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하게 조치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최 센터장이 바로 하루 전까지도 서울의 한 보호관찰소에서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 이 자리에서 알려진다. 한 참석자가 말한다.
“마퇴본부에서 얘기를 해도 본인이 자중하지 않고 계속 강의를 다니는 거예요. 그렇다면 저는 본부에서 더 강하게 (서울)지부에다가 얘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바로 어제도 강의했어요. 아무리 강사가 없어도 그렇죠. 저도 깜짝 놀란 게, 누가 저한테 그걸 보내줬어요. 저도 같은 회복자이지만 너무 민망합니다.”
다른 참석자도 말한다.
“중독 회복자 중에 가장 유명하고 알려진 사람이잖아요. 어디 강의를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최 선생님 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사람 요즘 아직도 활동하던데요?’ 하고요.”
사무총장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은 입모아 말한다. 문제가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마퇴본부의 도약을 위해 일은 키우지 않아야 한다. 우리끼리 보호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보호해야 돼.”
“서로 보호해 주고, 그렇게 해서 같이 가야 돼요. 그래야 앞으로 이게(마퇴본부 일이) 계속 커진다니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마퇴본부 주요 인사에게 성추행 의혹이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사무총장은 말한다. 박모 전 마퇴본부 센터장이다.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보호해 줘야 돼요.”
기타 공공기관 지정을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이런 당부도 나왔다.
“내년부터 사업도 굉장히 많아지잖아. 우리가 서로를 보호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진짜 힘들어요. (사업이) 10배가 늘어나, 10배가. 우리가 뛸 수 있는 여건이 훨씬 많아진다고. 그런 호조건에서 우리 자신을 깎아먹는 자해 행위는 하지 말자 이거지.”
장면 둘.
‘마퇴본부의 핵심 인사가 졸피뎀을 상습 투약한다.’
취재 중 숱하게 들은 이야기다. 장면 하나에 언급된 박모 전 마퇴본부 센터장이다. 박 전 센터장은 인천 다르크 최 센터장, 경기도 다르크 임모 전 센터장(⑫편 참조)과 어깨를 나란히 한, 또 다른 회복계의 셀럽이다. 마퇴본부가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워 온 인물이기도 하다. 중독에 빠져 살았으나 역경을 딛고 회복한 이야기의 주인공. 마퇴본부 전 사무총장은 이 인물을 “재활의 아이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회복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인물이다.
내부 문제를 확산시키지 않으려는 마퇴본부의 모습을 표현한 AI 생성 이미지
장면 셋.
2025년 12월16일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 현장. 이재명 대통령이 서국진 마퇴본부 이사장을 상대로 질의한다. 마약 투약자가 폭증하는 문제, 감옥에 가두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현실, 회복 및 재활 교육은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묻는다.
“마약퇴치운동본부는 정부 재정으로 운영하는 거겠죠? 그런데 여기 대상을 보니까, 재활교육 대상은, 조건부 기소유예 대상자만 교육한다는 말이죠?” (이재명 대통령)
“네 그렇습니다.” (서국진 마퇴본부 이사장)
“그럼 집유(집행유예) 받거나 수감됐던 사람들은 관리 안 해요?”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의 질문이 이어지고, 이사장의 답변이 헛돈다. 이 대통령은 마약 투약으로 수감된 재소자라면 재활교육을 모두 다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서 이사장은 “의무적으로 (교육)한다”고 답하면서, 교육 주체로 마퇴본부와 법무부 보호관찰소를 꼽았다. 틀린 답변이다. 재소자 교육은 법무부 교정본부가 맡는다. 보호관찰소는 집행유예 등 비수감자를 교육하는 곳이다.
마약사범 재소자 교육이 의무인지 선별인지, 교육 주체는 어디인지. 간단한 질문이지만 수분 동안 오간 질문과 답변에도 정리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서 이사장은 버벅였고, 이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다.
담당 국장이 황급히 마이크를 이어받았지만 그 역시 집행유예와 조건부 기소유예를 구분하지 못하고 답변해 혼란을 더했다.
졸피뎀 상습 사용 의혹도…“보호하고 지켜서” 나아진 것은 무엇인가
마퇴본부 수장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문제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덮어야 한다’고 입모으던 2023년의 어느 날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렇다.
1년도 지나지 않아 경기도 다르크의 임 전 센터장은 입소자 성추행 문제, 재정 문제가 불거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 전 센터장이 후원금을 개인 통장으로 받거나, 재판을 앞둔 중독 당사자들에게 탄원서를 써주고 돈을 받는다는 문제는 당시 참석자들도 알고 있었다. 임 전 센터장이 문제를 일으킨 뒤에도 박 전 센터장은 그에게 다시 힘을 실었다. 임 전 센터장은 생전에 경기도 다르크 입소자들에게 “잘만 하면 너를 마퇴본부에 꽂아주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했다.
감추려던 병폐가 더 큰 화가 되어, 중독 당사자들에게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던 경기도 다르크를 아예 사라지게 했다. 임 전 센터장의 말로를 보며 많은 중독자들이 저것이 자신의 결말일까 봐 몸을 떨었다. 입소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대부분 중독이 재발했다. 전직 이사장 말처럼 “우리끼리 서로 보호하고 지켜서” 나아진 것은 무엇일까. 보호하고자 한 사람은 지켜졌을까.
박 전 센터장이 졸피뎀을 상습적으로 사용하며,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회복계에서 공공연하다. 한 중독 당사자는 말했다. “(박 전 센터장이) 저에게 졸피뎀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려달라고 했어요.” 졸피뎀을 대리 처방받았다는 의혹을 귀띔해준 이도 있었다. 20년째 중독 회복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회복계 인사였다. “다른 환자 이름으로 졸피뎀을 처방받는다고 하더군요.”
또 다른 중독 당사자의 말이다. “졸피뎀을 먹고 NA(익명의 약물중독자) 모임에 나온 적이 있어요. 이미 졸피뎀을 쓴다는 말은 파다했고, 약기운에 취해서 모임에 나온 건 직접 봤으니까요. 지난주에 저한테 뭘 물어봤었는데, 기억을 못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그 얘기를 해요. 이번주 약 먹고 왔네, 하고요. 같이 한 이야기 기억 못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약 먹고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약기운에 늘어져 있어서 덜 다쳤다는 말도 들었어요.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모를 거라고 생각해도 문제고, 알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다면 더 문제죠.”
박 전 센터장을 형처럼 따르는 상담사도 “졸피뎀 있으면 달라”는 말을 듣고 나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주변인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했다.
최근 박 전 센터장을 한 마약 중독 회복 단체 총회에서 만났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행사 도중 그는 잠시 나와 밖을 걸었다. 옆으로는 한 중독 당사자가 우산을 든 채였다. 박 전 센터장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곤 유유히 걸었다. 중독자들의 우상, 회복의 상징, 그러나 그들 위에 군림하게 된 사람. 우편물 뜯는 것 하나, 커피 타는 것 하나 제 손으로 하고 입소자들을 부렸다는 임 전 센터장의 모습이 겹쳤다.
그를 안 지 20년이 넘은 한 학계 인사는 “결이 고운 사람이라 그를 참 좋아했다”고 말했다. 마퇴본부 초기부터 참여한 이 인사는 “그가 마퇴본부에서 회복계의 대표주자처럼 만들어지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꾸며낸 모습으로 살아가느라 그도 힘들 것”이라고도 했다.
박 전 센터장은 2024년 마퇴본부를 정년퇴직한 후 현재는 마퇴본부 상담전화 1342 상담원들을 교육하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퇴본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박 센터장은 2025년 6월부터 매달 두 차례 상담원들을 교육하고 6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다. 마퇴본부 관계자는 “(위촉에) 공모 절차는 없었고, 경험이 많은 분을 모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퇴본부를 퇴직한 뒤에도 그는 중독 회복 관련 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 전 센터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와 공개적으로 각을 세운 인물은 모두 마퇴본부에서 배제되어 있다. 졸피뎀 사용 의혹에 관해 묻는 기자의 전화나 문자에 박 전 센터장은 답을 하지 않았다.
(⑮편에서 계속)
[끊는 사람들] 연재는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432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QR코드로도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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