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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2, 2026

먹고 먹히고 잊고 잊히는 조리실…제 몸을 소모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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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갱更’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갱更’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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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과 짜증 섞인 얼굴로 조리대 앞에 선 피영에게 엄마 금옥이 1억3천만원이 담긴 통장을 내민다. 할아버지 천태가 공장에서 팔이 잘리고 산업재해 소송으로 받은 돈이다. 동료와 도시락을 만드는 조리실을 창업했지만 대출금 상환 압박을 받는 그에겐 단비 같은 돈이다. 하지만 피영은 쏘아붙인다. “엄마, 여기서 망하면 다신 청년 창업도 안 돼.”

2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갱更’(20일까지)은 조리실을 배경으로 압축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 사회가 소비해온 인간의 몸을 이야기한다. 국가와 사회, 기업의 책임을 다루지 않는다. 산재로 팔 잘린 80대 노인 천태, 아버지와 딸까지 책임지려는 60대 금옥, 베이비붐 세대 동료 몽고와 조리실을 창업한 40대 피영, 계약직으로 제 몫을 묵묵히 해내려는 30대 바리,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지키려는 20대 도로시를 통해 서로 다른 삶을 경험한 이들이 빚어내는 세대 갈등과 현실을 불편할 만큼 사적이고 직설적으로 풀어낸다. 서로 배려하는 듯하지만 누구도 상대가 직면한 현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되레 자신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걸 서로에게 강요하면서 ‘왜 나의 선의, 진정성을 몰라주냐’고 아우성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연극 ‘갱更’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갱更’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피영의 캐릭터는 복합적이다. “노인네의 쓸모없어진 몸을 보면 화가 난다” “자식을 뜯어먹으려 한다”며 자신에게 짐이 되고 갈등을 일으키는 할아버지에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동시에 조기 갱년기를 겪으며 산재 보상금으로 조리실 재정난을 극복하려 고민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도 감추지 않는다. 딸을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통장을 받고 부양하기로 결정한 금옥에겐 “내가 엄마를 뜯어먹는 것 같다”고 절규하고, 조리대에서 할아버지를 돼지 도축하듯 잘라내 그 살을 탐욕스럽게 먹는 환각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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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피가 흥건한 도축장에서 온갖 모욕을 감수하며 살아남은 경험에 기대 조리실 일을 힘겨워 하는 손녀의 유약함을 비난하고, 직원들의 개인주의를 질책한다. 그는 ‘어미 돼지가 허약하게 태어난 새끼를 잡아먹고 그 양분으로 젖이 돌게 해 다른 새끼를 다 살린다’는 논리로 자식을 버린 행위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독재를 미화하며 ‘닥치고 노력’을 강요해 갈등을 증폭한다. 요즘도 저런 노인이 과연 존재할까 싶을 만큼 극단적인 캐릭터를 통해 삶은 결국 ‘먹고 먹히며, 잊고 잊혀지며, 살고 살아지는 것’이라는 얘기를 전한다.

연극 ‘갱更’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갱更’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다시’를 뜻하는 작품명 ‘갱’은 누구나 태어나고 노동하고 은퇴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제 몸을 소모하며 각자의 시대, 각자의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걸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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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쓰고 연출한 본주는 작가 노트에서 조기 갱년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어린이는 자는 동안 크고, 어른은 자는 동안 상실하는 걸까요? 미처 자라지 못한 미숙한 이의 늦은 성장통을 안고, 비슷한 경계에 선 인물들을 그렸다. 모두 아름답지 못하다. 그들이 짊어질 사회도 그렇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경제난을 심하게 겪고 매정한 사회를 마주하고 나니 예술과 정의 같은 거창한 구호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며 “‘잘 사는’ 것과 ‘잘사는’ 것 사이에서 더 솔직하고 건강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부끄러운 자전적 얘기를 용기 내 뱉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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