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전기차 규제 완화’에 국내 업계 숨통 트이나?…투자 회수·경쟁 심화는 부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연구소 정상회담에서 연설하기 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이든 전 행정부의 핵심 환경 정책이었던 자동차 연비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로선 깐깐했던 전기차 전환 압박에서 벗어나 하이브리드(HEV)와 주행거리연장형 전기차(EREV)로 유연하게 대응할 시간을 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조 단위로 집행한 북미 생산 설비의 감가상각 부담과 현지 내연기관 완성차 업체의 반격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행정부의 기업평균연비제(CAFE)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새 기준을 승인했다. 2031년식 차량의 평균 연비 목표를 갤런당 50.4마일에서 34.5마일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유도하던 규제 부담이 크게 줄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전동화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환경보호청(EPA)의 배기가스 규제 완화에 이어 차량 연비 기준까지 대폭 후퇴하면서 미국 내 전동화 전환 속도는 급격히 둔화할 전망이다.
당장 국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로 떨어진 연비 과징금 리스크는 줄었다. 전임 행정부 기준을 충족하려면 미국 내 전체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공격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규제 허들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투싼, 싼타페, 스포티지 등 하이브리드 제품군의 판매 비중을 늘려 수익성을 방어할 틈새가 열렸다.
문제는 조 단위 자본을 쏟아부은 미국 현지 전동화 설비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배터리 합작공장 등에 수조 원대 투자를 집행했다. 순수전기차(EV) 양산을 전제로 짠 생산 라인을 혼류 생산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고 고정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스란히 기업의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미국 현지 업체들의 안방 공세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규제 부담이 줄면서 수익성이 높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픽업트럭의 판매를 유지할 여지가 커졌다. 이들 업체가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서 확보한 현금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투자에 활용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경쟁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공급망과 연구개발(R&D) 이원화에 따른 비용 증가도 부담 요인이다. 미국이 규제 완화로 돌아선 것과 달리 유럽연합(EU)은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북미 맞춤형 하이브리드·내연기관 플랫폼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유럽용 순수전기차 개발을 지속해야 하는 딜레마를 맞게 된다. 지역별 규제 양극화로 플랫폼 통합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가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연비 기준 후퇴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 일방적인 구원투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동화 숨 고르기라는 단기 안도감 뒤편에는 대규모 투자 설비의 회수 지연과 내연기관 시장에서의 치열한 가격 경쟁이라는 새로운 부담이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생산 비중을 조정할 여지는 커졌지만, 이미 투자한 전기차 생산설비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며 “시장 수요에 맞춰 생산 유연성을 확보하고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향후 수익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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