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불멸의 기록 ‘타율 0.412’ 백인천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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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
한국프로야구에는 아직도 누구도 넘지 못한 독보적인 숫자가 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백인천 전 감독이 남긴 타율이다. 그 뒤로 홈런은 더 많이 생산되고 투수의 공은 더 빨라졌지만, 4할 타자는 끝내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한국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지난 15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 향년 83.
백 전 감독은 전날 자택에서 심정지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뒤 심폐소생술을 통해 잠시 맥박을 되찾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 야구의 초석을 다진 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KBO장(역대 두번째)을 치른다. 발인은 17일 오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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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의 야구는 고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꽃을 피웠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 경동중·고를 거치며 야구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압도적인 운동 능력을 보였다. 1959년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그는 1962년 자유계약으로 일본프로야구(NPB)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하며 바다를 건넜다. 해외 진출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일본 프로 1군 무대에서 그는 19년(1963~1981년)을 버텼다. 다이헤이요 라이온스(현 세이부 라이온스),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긴테쓰 버펄로스를 거치며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1975년에는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편견을 이겨내고 한국인 타자가 일본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장 먼저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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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프로야구의 첫 장을 직접 썼다. 1982년 엠비시(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서른아홉 나이에 타율 0.412(250타수 103안타)를 기록했다. KBO 44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뿐인 불멸의 기록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거쳐 1984년까지 활약한 그는 한·일 양국 통산 23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지도자로서의 흔적도 굵었다. 1990년 엠비시 청룡을 인수한 엘지(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해 창단 첫해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했다. 선수 시절부터 가슴에 새긴 좌우명은 ‘혼(魂)’과 ‘노력자애(努力自愛)’였다. 재능은 출발일 뿐, 끝까지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만이 진짜 프로라는 믿음이었다. 동작 하나에도 혼을 실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엘지의 강력한 팀 문화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지휘봉도 잡았던 그는 ‘국민타자’로 불렸던 이승엽 현 요미우리 타격코치에게 ‘외다리 타법’을 전수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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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삶이 늘 영광뿐인 것은 아니었다. 강한 승부욕과 직설적인 성격은 때로 시대와 마찰을 빚었고, 말년에는 뇌경색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긴 투병 생활을 견뎌야 했다. 한때 시대를 호령했던 위대한 타자는 긴 투병 끝에 여전히 다음 타자를 기다리는 ‘0.412’의 기록을 남기고 하늘 위 그라운드로 떠났다. 그의 별세로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 초대 감독 가운데 생존자는 박영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만 남게 됐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추모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은 오래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고, 일본에서 함께 뛴 재일교포 장훈씨는 “한국 야구의 개척자”라며 백 전 감독을 회상했다. 이승엽 코치는 “배운 것들과 심어주신 자신감은 평생 잊지 않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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