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외딴섬 뒤덮은 플라스틱 쓰레기…다 어디서 왔을까
지난 9일 충남 태안 가의도 신장벌 해변에 해양 쓰레기가 쌓여있다. 반기웅 기자
지난 9일 여객선 갑판에서 바라본 충남 태안해안국립공원 가의도는 때 묻지 않은 섬처럼 보였다. 선착장에 닿기 전 뱃머리에서 바라본 가의도 신장벌 해변은 아름다웠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하얀 모래사장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졌다.
출발 25분여 만에 도착한 가의도 선착장에서 다시 낚싯배를 타고 섬을 반 바퀴쯤 돌아 신장벌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쓰레기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어렵게 배를 대고 마주한 해변 곳곳에는 페트병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부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물과 뒤엉킨 폐어구가 발에 차였다. 해변이 통째로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듯했다.
지난 9일 충남 태안 가의도 신장벌 해변에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반기웅 기자
400m에 달하는 해변을 따라 쓰레기 띠가 길게 이어졌다. 모래사장에 깊이 파묻힌 쓰레기는 힘을 줘 빼내도 꿈쩍하지 않았다. 큰 파도에 휩쓸려온 쓰레기들은 바위틈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가의도를 포함해 태안 해안 일대 쓰레기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는 김종명 국립공원공단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팀장은 “외국산 플라스틱 부이가 가의도 해양쓰레기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며 “외국산 페트병까지 포함하면 외국 기인 쓰레기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페트병, 가의도 해양쓰레기 ‘33%’ 차지
신장벌 해변에서 단연 눈에 띈 쓰레기는 플라스틱 페트병이었다. 실제로 국립공원공단이 무인기(드론) 촬영과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확인한 가의도 해양쓰레기 1만9701개(지난 8월 기준) 가운데 플라스틱 병류는 6527개로 전체의 33.1%에 달했다. 국산 음료 페트병뿐 아니라 중국 상표가 붙은 빙홍차와 러시아어가 적힌 탄산수 페트병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충남 태안 가의도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찍은 신장벌 해변. 국립공원공단
페트병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어업 과정에서 발생한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부이, 폐어구 등 ‘어업 쓰레기’였다.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수심이 얕은 해안 암초 사이를 빠져나가지 못한 채 파도에 따라 찰방거렸다. 어른 허리둘레만 한 중국산 플라스틱 부이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최근 해양 양식 과정에서 스티로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부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친환경’ 부이가 한국에 유입돼 쓰레기가 된 셈이다.
김 팀장은 “어업뿐만 아니라 태안 일대를 오가는 대형 선박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도 상당한 규모”라며 “구분이 어렵긴 하지만 선박에서 발생한 쓰레기도 이 일대를 모니터링할 때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 가의도 신장벌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 중국산 플라스틱 부이가 보인다. 반기웅 기자
온통 쓰레기뿐인 해변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섬 안쪽을 둘러보려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바닷가에 떠다니는 해양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비닐과 스티로폼 조각들이 파도와 함께 해안으로 밀려왔다.
밀려오는 쓰레기…“손쓸 방법 없어”
섬 주민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쓰레기에 지쳐가고 있다.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주민들이 삼삼오오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지만, 치우는 만큼 다시 쓰레기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기 버겁다. 7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섬에서 고령의 주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쓰레기 무게는 너무 무겁고 양이 많다.
충남 태안 가의도 선착장 인근 해안가.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다. 반기웅 기자
2019년부터 가의도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임영화씨(76)는 “원래 여기는 물이 깨끗해서 ‘동해 같은 서해’라고 불렸던 곳”이라며 “지금도 물 바닥은 깨끗한데 해안가에 밀려온 쓰레기가 많아서 보기에 좋지가 않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가의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무인도에도 해양쓰레기는 여지없이 밀려든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무인도인 목개도에서는 매월 800~1300개의 쓰레기가 확인된다. 페트병이 48.4%로 전체 쓰레기의 절반을 차지한다. 무게 기준으로는 가공목(24.5%)과 로프(15.2%), 스티로폼 부이(14.9%)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도 쓰레기투성이
또 다른 무인도인 화창도 내 해양쓰레기 개수와 무게는 매달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481개, 271.3㎏였던 쓰레기는 8월 1309개, 2621.5㎏으로 급증했다. 주민도 관광객도 없는 곳에 쓰레기만 쌓이는 셈이다.
태안 일대 해변에서도 쓰레기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확인된다. 국립공원공단이 태안 일대 해변 19곳을 모니터링한 결과, 지난 4~8월(5월 제외) 현장에서 집계된 해안쓰레기는 4만7055개였다. 개수로는 페트병류가 9351개(19.87%)로 가장 많았고, 무게로는 가공목이 35t(43.37%)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충남 태안 가의도 선착장 인근 해안. 중국 상표가 붙은 페트병이 버려져 있다. 반기웅 기자
국내 해양쓰레기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전국 해양폐기물 수거량은 2021년 12만736t에서 지난해 14만4615t으로 늘었다. 전국 4개 해양국립공원에서 수거된 해양폐기물도 2018년 708t에서 2022년 2158t으로 큰 폭으로 뛰었다.
해양쓰레기 규모 파악 못 해…국립공원, 드론·AI 모니터링 추진
하지만 수거량만으로는 실제 해안에 쌓인 해양쓰레기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집계되고 있지만, 얼마나 쌓여 있고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부족하다. 관리 주체도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해양수산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나뉘어 있어 해양쓰레기의 규모와 분포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4월부터 가의도를 포함해 태안국립공원 섬 3곳과 해변 19곳 등 22곳, 약 30㎞ 구간을 대상으로 매월 드론 영상을 촬영해 인공지능으로 해양쓰레기의 양과 성질, 상태를 분석하고 있다. 반복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쓰레기의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창준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장은 “드론 촬영과 인공지능 분석을 활용해 육안 조사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해안 쓰레기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데이터가 축적되면 해양 쓰레기 대응을 위한 예산과 인력을 필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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