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엔 北 압도한 軍이 있었다 [김선걸 칼럼]

北지뢰 가능성 일주일 뭉개
軍, 국민생명 보호 의지 있나
靑 주저하면 軍 용기 잃는다
우리 장병 명예·사기 지켜야
2015년 8월4일.
군사분계선 인근 지뢰폭발로 한국 장병 두명이 발목과 무릎을 잃었다.
합참은 즉시 조사에 착수해 엿새 후 8월10일 북한소행임을 발표했다. 당일 오후 11년만에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조사부터 응징까지 엿새, 주저함이 없었다.
8월20일 북한이 확성기를 향해 포를 쐈다. 우리는 K9자주포 수십발을 발사지점에 되받아 쏘고 최고경계태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최후통첩’‘완전무장’, 살벌한 표현이 오갔다. 그러나 오후에 북측은 먼저 협상을 제안했다.
그리고 판문점에서 시작된 고위급협상.
남측 대표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다. 평생 야전과 작전을 떠나지 않은 ‘북이 가장 두려워하던 군인’.
청와대에 브리핑룸이 설치됐다. 출입기자이던 필자도 무박4일을 기자실에서 보냈다. 브리핑은 낮과 밤, 새벽에도 시시각각 계속됐다.
북은 막판까지 ‘남측 자작극’을 주장하다 결국 두손을 들었다. 나흘만에 유감표명과 재발방지에 서명했다. 이례적인 굴복이었다.
당시 지켜봤던 ‘압도하는 협상’의 원칙은 이렇다. 핵심은 리더의 신속하고 확고한 결단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회의에서 “북한이 사과나 재발방지약속을 않으면 상응조치와 확성기 방송을 계속하겠다”고 못박았다. 북측 몽니 때 두차례나 협상단에 철수를 지시했다. 철수하려는 김 실장을 북측이 화장실까지 따라와 붙잡았다는 일화가 회자됐다.
뒷배는 국민의 지지였다. 북 도발에 분노한 여론이 팽배했다. 합의 직후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는 49%로 한 주 만에 15%p 뛰어 취임 후 최대 상승폭, 남북 협상은 “잘됐다”가 65%(잘못됐다 16%)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지지도는 49.2%, 청와대 ‘원칙 견지’를 상승 요인으로 짚었다.
협상장이 남쪽 ‘자유의 집’으로 홈그라운드였고, 보안이 우수한 통신 인프라, 협상자의 건강상태 등 제반여건도 유리했다. 그럼에도 결국 핵심은 청와대의 결기와 국민 지지였다.
11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 사고발생 직후 북한지뢰를 봤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군은 함구했다.
사고 이전, 북한이 지뢰지대 등 6곳을 군사분계선 넘어 설치했다는 야당 의원 지적도 있었다. 국방부는 “지형 변화를 식별했다”며 모호하게 넘어갔다.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조사일정을 앞당기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북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늑장대응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지금 남북 지도부는 11년 전과 다르다.
2015년 김 실장의 카운터파트 황병서는 76세의 노쇠한 당료 출신이었고, 김정은은 부친의 급사로 집권한 4년차, 만 31세의 미숙한 지도자였다.
지금 김정은은 42세, 집권 15년차 노련함을 갖췄고 중·러와 밀착했다. 핵을 내세워 위상을 알리고 싶어한다. 완전히 다른 상대다.
우리 이재명정부는 역대급으로 북에 유화적이다. 매뉴얼대로 원칙 대응이 가능할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국방의 원칙은 단 하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의지다. 신속하게 조사 결과를 내놓고 결연하게 행동해야 한다.
군은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통수권자의 입장이 모호하면 닻줄 끊긴 배처럼 흘러다닌다.
청와대가 주저하면 군은 용기를 잃는다.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보고있다. 목숨 걸고 최전선 임무를 수행한 장병들의 명예와 사기를 이 정부가 지킬수 있을까. 이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누가 군에 입대해 복무하겠나.
11년전 김관진 실장은 장병들에게 지시했다. “쏠까요 말까요 하지말고 바로 응징하라. 적이 굴복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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