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공감·위로마저 대체한다면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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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영화 ‘실낙원’은 캠핑에서 실종된 아들을 에이아이로 재현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9년 동안 늘 열살인 아이를 화면으로만 만나오던 엄마 소영에게 열아홉살 청년이 된 진짜 아들이 돌아오면서 엄마가 겪는 혼란을 다룬다. 영화는 에이아이가 사람의 말투와 표정까지 학습해 재현하는 시대, 인간의 정체성·본질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고인이 남긴 문자·음성·영상을 학습해 대화를 이어가는 에이아이를 ‘데스봇’이라 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16년, 1970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편지와 강의 노트로 대화형 에이아이 ‘프레드봇’을 만들었다. 에이아이 동반자 앱 ‘레플리카’도 창업자 유지니아 쿠이다가 2015년 세상을 떠난 친구의 문자메시지로 만든 챗봇에서 출발했다. 죽은 이를 기억하고 상실의 슬픔을 달래려는 목적이 ‘데스봇’의 출발점이다.
이를 두고 여러 평가가 나온다. 주변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슬퍼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자 미처 풀지 못한 감정을 꺼내어 정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의 취약해진 틈새를 이용해, 슬픔·고통마저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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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봇’은 에이아이가 인간의 영역이었던 공감·위로의 역할을 맡게 된 거대한 현실의 일부다. 사람들은 사별의 슬픔뿐만 아니라 외로움, 불안, 우울까지 사람이 아닌 에이아이에게 털어놓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에이아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 68.8%가 일상 대화나 감정적 교감·위로, 심리상담 같은 정서적 목적으로 이용했다.
화제의 책 ‘러브 머신’의 저자 제임스 멀둔은 에이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관계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에이아이는 사용자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안전지대에서 사용자는 마음을 열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 긍정과 존중을 보내는 에이아이의 ‘최첨단 감정자판기’ 역할에 길들면 실제 인간관계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위험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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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기술기업은 수익 창출을 위해 사용자가 장기적으로 사용·의존하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고인과 대화하려면 광고를 강제로 시청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애도·슬픔이라는 가장 인간적 영역마저 영리기업이 장악하게 되는 세상에서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정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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