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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23, 2026

팔 것도, 보여줄 것도 아닌데 만든다…AI시대 오리고 붙여서 만드는 나만의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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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magazine’에서 유래한 말로,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이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을 담아 만드는 독립적인 출판물을 뜻한다. 정해진 판형이나 페이지 수, 유통 방식도 없다. 몇 장짜리 복사물일 수도 있고, 정교하게 제본한 작은 책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zine 갈무리

진은 ‘magazine’에서 유래한 말로,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이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을 담아 만드는 독립적인 출판물을 뜻한다. 정해진 판형이나 페이지 수, 유통 방식도 없다. 몇 장짜리 복사물일 수도 있고, 정교하게 제본한 작은 책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zine 갈무리

모든 것이 빨리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시대, 사람들은 느린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을 인화하고, 종이를 자르고, 페이지를 직접 배치한다. 완성된 것은 몇 장짜리 작은 책 한 권, ‘진(Zine)’이라 불리는 이 독립출판물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취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은 ‘magazine’에서 유래한 말로,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이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을 담아 만드는 독립적인 출판물을 뜻한다. 정해진 판형이나 페이지 수, 유통 방식도 없다. 몇 장짜리 복사물일 수도 있고, 정교하게 제본한 작은 책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출판사의 허가도, 대규모 독자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들고 싶은 사람이 만들면 그 자체로 진이 된다.

보여주기에 지친 사람들

최근 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디지털 환경과 관련이 깊다. 매일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쏟아지는 SNS에서는 무엇을 올릴지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보일지까지 신경 써야 한다. 반면 진은 누군가의 피드에 등장할 필요가 없다. 알고리즘을 통과할 필요도, ‘좋아요’를 많이 받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진은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에 지친 사람들이 선택하는 느린 매체가 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을 고르고,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고민하고, 종이를 접고 자르는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완성된 결과물에는 디지털 이미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종이의 질감과 인쇄의 어긋남, 손으로 만든 흔적이 남는다.

AI의 등장도 이런 흐름을 선명하게 만든다. 원하는 이미지를 몇 초 만에 만들고 문장까지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오히려 서툴고 번거로운 손작업이 차별점이 된 것이다. 진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의 완성도만이 아니다. 누가 무엇을 골랐고, 어떤 방식으로 편집했으며, 실제로 손을 움직여 그것을 만들었다는 과정까지 결과물 일부가 된다.

한국에서도 진을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과 워크숍이 이어지고 있다. 미술관이나 문화기관에서는 사진과 글을 편집해 자신만의 진을 제작하거나,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해 작은 출판물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진이 일부 독립출판 마니아의 취미를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볼 수 있는 창작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좋아하는 영화 목록, 동네의 오래된 간판, 여행 중 찍은 사진, 수집한 영수증, 한 사람과 나눈 대화, 매일 기록한 일기까지 모두 진의 재료가 된다.

좋아하는 영화 목록, 동네의 오래된 간판, 여행 중 찍은 사진, 수집한 영수증, 한 사람과 나눈 대화, 매일 기록한 일기까지 모두 진의 재료가 된다.

이걸 굳이 책으로, 싶지만

진의 소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좋아하는 영화 목록, 동네의 오래된 간판, 여행 중 찍은 사진, 수집한 영수증, 한 사람과 나눈 대화, 매일 기록한 일기까지 모두 진의 재료가 된다. 정해진 주제도 없다. 오히려 ‘이걸 굳이 책으로 만들어야 하나?’ 싶은 사소한 관심사가 진에서는 가장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진은 잡지와 닮았지만 잡지와는 다르다. 잡지가 독자를 상정하고 콘텐츠를 편집한다면, 진은 만드는 사람의 취향과 시선이 훨씬 앞에 놓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까’보다 ‘나는 이것을 왜 남기고 싶은가’가 먼저다.

때문에 진을 만드는 행위는 작은 출판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아카이빙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SNS 게시물을 한 권의 물건으로 붙잡아두는 일이다. 오늘은 별것 아닌 사진과 문장이 시간이 지난 뒤에는 한 시절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도 많지 않다. 종이와 프린터, 가위와 풀 정도면 시작할 수 있다. 기존 사진이나 글을 인쇄해 오려 붙여도 되고, 직접 그려도 된다. 페이지를 자유롭게 구성한 뒤 복사하거나 출력해 접고 제본하면 된다. 완벽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진에서는 삐뚤어진 선이나 어긋난 이미지조차 제작자의 개성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진의 유행은 새로운 것이 유행한다기보다, 빠르게 변한 미디어 환경에 대한 작은 반작용에 가깝다. 화면 속에서 사라지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이 다시 작은 종이 한 권을 만드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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