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통령’ 마크롱의 씁쓸한 퇴장···프랑스 청년들, 임기말 거리로
17일(현지시간) 열악한 교육 환경과 생활비 부담에 항의하며 벌어진 프랑스 리옹의 시위 현장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불타는 관광 안내소 앞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돼 ‘세대교체’와 정치적 쇄신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 말 청년층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교육 환경과 생활비 문제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는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참여로 확대됐고, 한때 마크롱 정부를 뒤흔들었던 ‘노란 조끼’ 시위 세력까지 합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정 긴축과 교육·복지 정책을 둘러싼 불만이 쌓이면서, 젊은 나이로 집권한 마크롱이 정작 청년층의 삶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규모 시위에 1200명 체포···“마크롱, 청년 세대와 관계 파국”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신화통신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7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과 청년 세대의 관계가 사실상 파국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시위에는 정부 추산 55만명, 주최 측 추산 80만명이 참여했다. 정부 추산으로는 지난 6일 26만명이 참가한 이후 최대 규모다. 파리 북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 부족 문제 해결과 시설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는 생활비 부담과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참여로 확대됐다. 2018년 유류세 인상과 불평등에 반발해 마크롱 정부를 뒤흔들었던 노란 조끼 시위 세력과 기후 운동가, 농민들도 시위에 참가했다.
이번 시위에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차량·공공시설 방화, 상점 약탈 등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로랑 누녜스 내무장관은 지금까지 약 1200명이 체포됐으며, 대부분이 성인이라고 밝혔다. 시위는 프랑스를 넘어 벨기에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도 번지고 있다.
젊은 지도자였지만···“청년층 지지 처음부터 취약”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시위 현장에서 차량이 불타고 있다. 신화통신
마크롱 대통령과 청년층의 거리는 집권 초기부터 벌어져 있었다. 르몽드는 마크롱이 “사회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내세워 집권했으나, 실제 지지 기반은 학생보다 젊은 전문직 종사자와 부유한 고위 임원층에 더 가까웠다”고 짚었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8~24세 유권자들의 선택은 장뤼크 멜랑숑과 마린 르펜에 이어 마크롱이 3위였고, 2024년 총선에서는 마크롱 진영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 유권자가 10명 중 1명도 되지 않았다. 젊은 지도자라는 상징성이 청년층의 실질적인 지지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청년층의 이탈에는 집권 초기부터 쌓인 정책 불만이 작용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실업 상태인 청년 원예사에게 “길만 건너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 청년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학교 폐쇄와 사회적 고립을 겪은 청년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청년층과 소통하려 했지만, 지난해 “청소년을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거리감을 드러냈다.
교육 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반복됐다. 2018년 장미셸 블랑케 당시 교육장관이 추진한 고교 개혁은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돼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의 수시·정시 원서 접수 시스템 격인 ‘파르쿠르숩’ 도입 과정에서도 학생교사의 반발이 일었다. 최근 4년간 교육장관이 7명이나 교체되면서 교육 정책의 일관성과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복지 줄이고 복무 의무 늘리고···청년에게 돌아온 긴축 부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대가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한 이번 시위에는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주축으로 과거 ‘노란 조끼’ 시위대, 기후 운동가, 농민 등이 참가했다. AFP연합뉴스
청년층의 불만은 교육을 넘어 정부의 재정·복지 정책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15%를 웃돌고, 지난해 재정적자는 GDP의 5.1%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재정적자를 5% 미만으로 줄이기 위해 복지 지출 삭감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청년층의 생활 여건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7월부터 적용된 청년·저소득층 주거보조금 삭감이 대표적이다.
연금개혁으로 정년을 늦춘 데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복무 의무까지 강조하면서 청년층의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10개월간의 유급 군 복무 제도를 도입했다. 브뤼노 르메르 전 경제장관은 최근 연금 수급자 관련 지출은 늘어난 반면 교육 지출은 정체됐다며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카미유 푸니는 르몽드 기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지난 10년간 온순하고 순종적인 청년을 원했다”며 “정부가 청년 참여를 독려할 때는 군 복무 같은 제도적 틀을 제시하면서, 청년들이 교육환경 개선 등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행동하면 이를 불법 행위나 공공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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