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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7, 2026

벌레의 마음, 해파리의 마음 [이대한의 낭만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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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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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은 현대 생명과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에서도 ‘엠알시(MRC) 분자생물학 연구소’(MRC-LMB·엠알시 연구소)는 가히 ‘성전’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시작된 단백질 구조 연구는 1947년 엠알시 유닛(Unit)으로 발전했고, 이후 디엔에이(DNA) 구조와 유전을 비롯한 생명 현상의 분자적 원리를 밝히는 연구로 확장되어 엠알시 연구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20세기 중반의 이른바 ‘분자생물학 혁명’을 이끈 중심축 가운데 하나였다.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디엔에이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연구가 이루어진 곳도 바로 캐번디시 연구소 내 엠알시 유닛이었다. 지금까지 엠알시 연구소 역사 속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무려 16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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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명이 바로 200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시드니 브레너다. 1953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브레너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왓슨과 크릭의 디엔에이 모델을 보기 위해 케임브리지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 방문은 브레너를 분자생물학 혁명가의 길로 이끌게 된다. 그는 훗날 “이제 우리는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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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크릭의 초청으로 엠알시 유닛에 합류한 브레너는 디엔에이에 쓰인 유전정보가 어떻게 복제되고 처리되는지를 규정한 초기 분자 유전학의 핵심 설계자 중 한명으로 맹활약한다. 예컨대 그는 디엔에이와 단백질 사이에서 정보 전달을 매개하는 메신저 알엔에이(RNA)의 존재를 입증하고, 유전암호가 세개의 뉴클레오티드 단위로 작동한다는 트리플렛 코드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62년은 엠알시 연구소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였다. 엠알시 유닛이 확장하여 연구소가 설립된 해이자, 그 연구소와 전신인 엠알시 유닛에서 핵심 연구를 수행했던 맥스 퍼루츠, 존 켄드루,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 네 사람이 같은 해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인 1963년 6월, 엠알시 연구소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은 브레너는 당시 연구소를 이끌고 있던 퍼루츠에게 앞으로 연구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연구 방향에 대한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분자생물학의 ‘고전적’ 문제가 거의 풀렸거나 앞으로 풀릴 것이라면서, 이제 발생과 신경계가 분자생물학이 도전해야 할 새로운 핵심 문제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새로운 연구를 위해 아주 작은 동물 하나를 ‘길들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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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탐색 끝에 브레너가 최종적으로 길들인 작은 동물이 바로 예쁜꼬마선충이다. 이후 엠알시 연구소에서는 브레너의 비전 아래 예쁜꼬마선충을 모델로 두가지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바로 ‘벌레의 족보’와 ‘벌레의 마음’ 프로젝트였다. ‘벌레의 족보’는 존 설스턴과 동료들이 수정란에서 성체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지는 모든 세포의 계보를 추적한 최초의 완전한 세포 족보 프로젝트였다. 또 ‘벌레의 마음’은 존 화이트와 동료들이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성체 자웅동체의 302개 뉴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풀어낸, 오늘날 ‘커넥톰’(connectome)이라 부르는 최초의 완전한 신경 연결 지도를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였다. 이 두가지 프로젝트가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며 작은 선충은 현대 생명과학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첫 연구 학기를 맞아 8월25일부터 현대 생명과학의 성전이자 나의 학문적 계보로 따지면 증조할아버지인 브레너가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시작한 역사적 장소인 엠알시 연구소에 방문연구자로 여섯달간 머물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이곳을 택한 데는, 연구자로서 나의 학문적 뿌리가 바로 이곳에 닿아 있다는 이유도 컸다.

이곳에서 나는 ‘해파리의 마음’을 해독하는 연구를 모색해 보려고 한다. 브레너는 유전자와 뉴런, 신경회로와 행동을 하나의 동물 안에서 연결해 통합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예쁜꼬마선충과 초파리의 신경계를 연구하던 나는 이제 브레너의 질문에 진화와 기원이라는 시간 축을 더해보고 싶어졌고, 예쁜꼬마선충보다 우리에게서 더 먼 친척인 해파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인간의 복잡미묘한 마음을 가능케 하는 신경계는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대장균과 바이러스를 통해 분자생물학이 눈부신 성공을 거두던 시절, 브레너는 작은 벌레를 통해 그 성공을 발생과 신경계라는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확장할 길을 보았다. 나 역시 해파리에게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혀갈 길을 보며 오늘도 분자생물학의 성전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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